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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시설공단 사업 배후엔 ‘철도마피아’
김태훈 기자 anarq@kyunghyang.com
철도시설공단이 시행한 사업들에 대한 의혹과 문제제기가 끊이지 않는 것은 공단 퇴직자들이 철도 분야의 민간업체로 재취업하는 관행과 무관치 않다. 민간업체들은 공사를 따내기 위해 공단의 현직 임직원들과 끈이 닿는 퇴직자들을 앞다투어 채용한다.

공단 퇴직자들이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이들의 영입 여부에 따라 업계 수주 순위가 뒤바뀌는 일도 수시로 벌어졌다. 민간업체와 퇴직자, 현직 임직원들 사이에 형성된 유착 고리가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이렇게 인맥으로 공사를 따내 시공하는 업체들에선 기술개발이 뒷전으로 밀릴 수밖에 없고, 비용 절감을 위해 부실시공을 하는 경우가 많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얘기다.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한 경부고속철도 2단계 부산 금정터널 구간에서 건설업체 직원들이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공단 퇴직자들 관련업체로 재취업

실제로 <주간경향>이 철도시설공단 퇴직자(고속철도건설공단 시절 퇴직자 포함)들의 재취업 현황 자료를 입수해 분석한 결과, 공단 퇴직 후 현재 직장이 파악된 185명 가운데 136명이 철도 관련 민간업체에 근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임원급 퇴직자들은 45명 가운데 37명이 관련 민간업체에 적을 두고 있었다. 처장급에선 32명 중 28명이, 부장급은 53명 중 34명이 철도 관련업체로 소속을 옮겼다.

철도시설공단의 올 한 해 예산은 11조3730억원에 달한다. 이 가운데 고속철도·일반철도 등에 사용되는 사업비만도 7조6200억원을 넘는 데다, 공모하는 사업 분야도 건축·토목·전기·통신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있어 공단 사업은 관련 업계에선 놓칠 수 없는 돈줄이다. 공단이 295개 공공기관 가운데 자산규모 9위, 부채규모 7위에 해당하는 대형 기관인 만큼 이해관계가 걸려 있는 민간업체 입장에서는 상당한 보수를 제시하면서까지 공단 퇴직자 영입에 나설 수밖에 없는 것이다.

철도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퇴직자들이 관련 업계로 이직하는 것 자체를 문제삼을 수는 없다. 하지만 임원급 퇴직자들의 경우 민간업체 입사 이후 해당 업체의 시설공단 사업 수주 금액이 크게 늘어나는 현상이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문제가 적지 않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퇴직자들을 우대하는 ‘전관예우’가 사라지지 않고 있고, 이를 민간업체에서 적극 활용하면서 공단 사업 자체가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공단의 관리본부장을 역임한 뒤 퇴직한 안모씨를 영입한 철도 신호제어·차량 분야 업체 ㄷ사는 지난해 61억원 규모의 신호설비공사 계약을 따낸 데 이어 올해에도 각각 135억원, 222억원 규모의 관제설비 구매공급계약을 공단과 맺었다. 설계·감리 업종은 공단 퇴직자들이 가장 많이 진출한 분야다. 한 해 1500억원 이상의 발주금액 가운데 15%를 점유하며 이 분야 업계 1위를 차지하고 있는 ㅋ사는 공단 기획조정실장 출신 조모씨를 비롯, 처장급 퇴직자 1명, 부장급 퇴직자 2명이 임원으로 재직 중이다. 그 뒤를 쫓고 있는 ㄷ사 역시 공단 퇴직자 출신 5명이 임원으로 재직하고 있다. 또 다른 ㄷ사는 2011년 수주액 기준 14위에 머물렀지만 그해 10월 퇴직한 고속철도사업단장 출신 남모씨를 영입한 뒤 지난해에는 업계 3위로 뛰어오르기도 했다.

이와 같은 사실은 국회의 지난해 국정감사에서도 드러난 바 있다. 민주당 박기춘 의원은 철도시설공단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이른바 ‘철도마피아’로 불리는 철도고·철도대학 출신들이 철도시설공단을 장악하면서 퇴직 후 자리에서도 횡포를 부리고 있다”고 주장했다. 박 의원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발주된 사업의 평가위원들은 모두 공단 내부인사로 구성되는데, 학연으로 얽힌 철도고·철도대학 출신 동문들이 민간업체로 옮긴 퇴직자의 소속 업체를 지원하며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는 것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몇몇 업체에서 임원급을 포함해 부장 이상 직위에서 퇴직한 인사, 특히 철도고·철도대학 출신 퇴직자를 영입하기 위해 별도의 스카우트 비용까지 제시한다는 소문이 업계에선 공공연히 떠돌고 있다”고 말했다.

각종 사업 수주과정에서 ‘입김’ 작용

박 의원 자료에 따르면 모 업체의 경우 공단에서 요직을 역임한 임원급 출신에 대해 연봉과 활동비, 스카우트 비용 등 연간 5억원 이상의 비용을 책정하기도 했다.

시설공단 직원의 말 역시 업계와 다르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한 한 공단 직원은 “공단 사업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업계의 민원이 끊이지 않는 이유는 중간에 브로커(공단 퇴직자)가 끼여 있어 공정한 입찰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며 “선정된 업체의 실적이 좋지 않거나 불합리한 관행을 계속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공단 직원은 브로커를 끼고 있는 직원들의 압력으로 머지않아 불이익을 당할 각오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업 수주 과정에서 공단 퇴직자의 입김이 크게 작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피해는 결국 소규모 업체들에게 돌아간다. 공단의 설계·감리업계 수주액 순위에서 20위 이하로만 떨어져도 연간 10억원 이상을 수주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공단을 퇴직한 뒤 민간업체를 창업하는 경우도 꾸준해 시공능력에서 밀리기보다는 인맥 관리에서 밀려 사업을 더 지속하지 못하는 업체도 늘고 있다.

반복되는 문제제기에 손을 놓고 있던 공단은 지난 7월에야 임직원 행동강령을 개정하는 등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단에 따르면 개정되는 행동강령에는 향응 수수·알선 청탁의 금지대상을 확대하고 퇴직자들과의 사적인 접촉, 발주정보 유출 등을 비리행위로 규정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또 공직자윤리법 상 퇴직 후 관련 업체 취업제한 대상이 아닌 처·부장급 직원에 대해서도 퇴직 후 직무 관련 업체 취업을 자제하도록 권고하기로 했다. 그러나 개정된 강령이 권고규정으로 강제성이 없는 데다, 어길 경우 구체적인 처벌규정도 없어 실효성이 떨어진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한 철도 관련 중소업체 대표는 “정당하지 않은 방법으로 수주를 받은 업체에 대한 입찰제한 조치는 포함되지 않고, 직원들도 신경쓰지 않을 행동강령만 내놓은 것은 철도시설공단이 그저 눈앞의 상황만 모면하려고 내놓은 요식행위로 보인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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