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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적]여군 성폭력 
이중근 논설위원
1999년 <장군의 딸>이라는 할리우드 영화가 있었다. 차기 부통령 후보로까지 거론되는 장군의 딸이자 유능한 여군 장교가 연병장에서 나체로 묶인 채 살해된 사건을 군 수사관이 파헤쳐가는 게 줄거리다. 수사관은 아버지와 그 부하들의 교묘한 사건 은폐 시도를 걷어내고 여군 장교가 육사 생도 시절 남자 동기생들로부터 성폭행을 당한 게 발단임을 밝혀낸다. 그리고 성폭행 사건 은폐 뒤에 아버지가 있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장군은 딸의 성폭행 사실이 밝혀지면 군과 여성 생도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일 것을 우려해 사건을 덮은 것이다. 딸의 비극까지 숨길 만큼 군의 명예를 생각하는 장군의 비정함이 충격적이었다.

그제 국감장에서 ‘성 군기사고 예방 교육자료(DVD)’와 ‘초임여군 군생활 안내서’가 공개됐다. 자료는 상관의 성추행을 단호히 뿌리치지 말고 적당한 때에 넌지시 불편한 마음을 전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혹시 제가 오해를 한 것 때문에 기분 나빠하실까 걱정이 되지만…”이라거나 “물론 저를 아끼시는 마음에 나쁜 의도가 전혀 없으셨겠지만”이라며 부드럽게 문제를 제기하라는 내용도 들어 있다. 애교 있는 말투와 몸에 붙는 옷차림이 성범죄를 유발한다는 언급도 있다. 여성에게 성범죄 원인을 전가하는 불평등 성인식의 표본이다.

군내 성폭력이 은폐되고 있다는 것은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지난 7월 군인권센터가 입수해 공개한 국방부 자료를 보면, 입건된 군내 성폭력 사건 중 절반이 공소권 없음이나 기소유예 처분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2차 피해도 심각하다. 부대의 명예나 책임자에게 닥칠 인사상의 불이익 등을 우려해 사건을 덮으려는 소속 부대 지휘관들의 시도가 여전하다는 것이다.

여군은 이미 장식품이 아니라 전투력의 중요한 요소다. 국방부는 최근 포병·기갑 등 12개 전투병과에 여군을 투입하겠다고 밝혔다. 2020년에는 전체 병력의 5.6%인 1만1500여명이 여군으로 채워진다. 여군에 대한 성폭력은 중대한 군기 문란 행위로 간주돼야 한다. 과거 미군은 성폭력 문제로 여군 모병에 어려움을 겪은 적이 있다. 군 관계자는 “군대처럼 성범죄에 대한 교육을 많이 시키는 곳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성범죄에 대한 군 간부들의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이런 교육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이번 사례가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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