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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영하의 음식 100년](18) 편육
주영하 |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ㆍ수육을 저민 음식이 편육 … 돼지머리가 일미

조선시대 사람들이 음식을 상에 차릴 때 어떤 규칙을 가지고 있었는지가 무척 궁금하지만 불행하게도 19세기 중반 이전의 문헌 중에서 아직까지 이것이 발견된 것은 없다. 다만 19세기 말경에 쓰였을 것으로 여겨지는 <시의전서·음식방문>의 말미에 ‘반상식도’가 나올 뿐이다. 이 책의 ‘반상식도’에는 구첩반상·칠첩반상·오첩반상·곁상·술상·신선로상·입매상의 상차림 규칙이 그림으로 그려져 있다. 그런데 곁상·술상·신선로상을 제외한 나머지 상 모두에는 한글로 쓰인 ‘숙육’이란 음식이 나온다. 그만큼 이 책의 저자는 숙육을 상을 차릴 때 반드시 내야 하는 음식으로 이해한 듯하다. 숙육이란 어떤 음식인가? 당연히 이 책에 그 조리법이 나온다. 한자로 ‘孰肉’이라 썼지만, 아마도 ‘熟肉’의 잘못으로 보인다. “양지머리·부화·길허·유통·우랑·쇠머리·사태·이자·제육을 다 삶아 썰어 쓰나니라. 삶아 뼈 추려 한데 합하여 보에 싸 눌러다 쓰면 좋으니라. 제육은 초장과 젓국과 고쵸가루 넣어 쓰고 마늘 져며 싸 먹으면 느끼하지 아니 하나니라.”

알다시피 양지머리는 소의 가슴에 붙은 뼈와 살을 가리킨다. 부화는 허파를 가리키는 부아의 잘못으로 보인다. 길허는 지라로 비장 부위를 가리킨다. 유통은 소의 젖퉁이 고기를 부르는 말이다. 우랑은 우낭(牛囊)으로 쇠불알을 뜻한다. 쇠머리는 소의 머리고기다. 사태는 소의 오금에 붙은 살덩이를 가리킨다. 이자는 췌장의 다른 말이다. 제육은 저육(저肉) 곧 돼지고기를 부르는 백성들의 소리다. 비록 이 책에서는 쇠고기의 살덩이 혹은 내장 부위, 그리고 돼지고기만을 언급했지만, 넓은 의미에서 숙육은 고기를 푹 삶아 내어 물기를 뺀 음식을 가리킨다. 그런데 삶아서 뼈를 추린 다음에 보자기에 싸서 눌렀다가 쓰면 좋다고 했다. 숙육을 얇게 저민 편육(片肉)을 염두에 두고 이렇게 적은 듯하다.

조선시대 문헌에서 ‘편육’이란 단어는 크게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쓰였다. 그 하나는 고기 조각을 가리킬 때 썼다. 다른 하나는 음식 이름으로서의 편육이다. 대체로 19세기 중엽부터 숙육을 저민 음식을 아예 편육이라고 부른 듯하다. 1865년(고종 2년) 음력 10월1일 경복궁의 광화문 좌측에 의정부가 중건되었다. 같은 해 같은 달 12일, 이것을 기념하여 고종이 의정부를 직접 방문하였다. 의정부에서는 고종이 앉은 자리에 약과·다식·배·감·유자 등과 함께 고기류로 편육·전유어·화양적·갑회와 각종 구이를 한 그릇씩 올렸다. 이 내용은 <친림정부시의궤>란 책에 나온다. 아마도 현재까지 편육이 독립된 음식 이름으로 등장한 문헌은 이 책이 처음이 아닐까 여겨진다.

1924년 출판된 <조선무쌍신식요리제법>에서 이용기는 ‘편육 먹는 법’이란 항목을 두어 본격적으로 편육에 대해 다루었다. 그런데 그의 편육에 대한 논평이 사뭇 긍정적이지 않다. “편육이란 것은 자래로 식성이요 풍속이요 습관이라 할 만한 것이니 불과 시약 달이 듯하여 약은 버리고 약 찌꺼기를 먹는 셈이니 원 좋은 고기 맛은 다 빠진 것이라 무엇에 그리 맛이 있으며 자양인들 되리요.” 이렇듯 편육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이용기는 오로지 오래된 관습이라 어쩔 수 없이 이 책에 적을 뿐이라는 심정을 밝혔다.

이 책의 다른 항목에서는 주로 ‘만드는 법’이라 적었지만, 유독 편육에서는 ‘먹는 법’이라 적었다. 그러면서 양지머리편육·업진편육·제육편육·쇠머리편육 네 가지를 다루었다.

이 중에서 업진편육의 업진은 소의 가슴에 붙은 고기를 가리킨다. 업진편육은 “날로 가져다가 삶으면 장국이 제일이요 혹은 살은 맛도 좋고 국수에 놓아먹는데 제일 좋으니 편육 중에서 상등이 되나리라”고 했다. 실제로 일제시대 조리서와 신문·잡지에 소개된 편육은 주로 그 자체보다는 다른 요리의 재료로 쓰였다. 일제시대 평양음식으로 유명했던 어복쟁반에 들어가는 편육도 업진편육이 으뜸이었다. “당초에는 쇠고기로 만들지를 아니하고 물고기 내장들을 가지고 만들었던 것이라 어복(魚腹)이라고 한 것인 듯한데 그 후에는 소의 내장에다가 소의 골수를 섞어 가지고 만들었던 모양이며 다음에는 쇠고기에다가 소의 골수를 섞어 넣어서 만들어서 마침내 지금의 어복장국이 되고 말은 모양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어복장국은 순전한 연한 암소의 가슴팩이살-경성서 ‘업주인’이라고 소위 편육을 만드는 고기-로 만드는데 그 중에도 잘 만드는 어복에는 지금도 골수를 넣는다하나 대개는 값이 비싸고 구하기가 어려운 까닭으로 골수는 넣지 않고 ‘업주인’ 고기로만 만든다고 합니다.”(동아일보 1926년 8월22일자)

<시의전서·음식방문>에 나오는 ‘반상식도’. 그림 위의 구첩반상은 바깥 아래에서 왼쪽으로 반, 젓갈, 자반, 전유어, 숙육, 김치, 회, 나물, 쌈, 생선구이, 육구이, 갱. 안쪽은 아래에서 왼쪽으로 초장, 겨자, 지렁(간장), 양조치, 생선조치, 맑은조치. 아래 그림은 칠첩반상으로 바깥 아래에서 왼쪽으로 반, 젓갈, 자반, 회, 김치, 숙육, 나물, 쌈, 구이, 갱. 안쪽 아래에서 왼쪽으로 초장, 겨자, 지렁, 토장조치, 맑은조치.

여기의 ‘업주인’이 바로 업진이다. 이용기는 업진편육을 새우젓에 기름과 고춧가루를 치고 편육을 잘게 썰어 넣고 한데 버무려 먹기도 한다고 했다. 앞의 동아일보 어복쟁반 글쓴이 ‘버들쇠’도 “서울의 소위 곰국 건더기 양념하듯이 갖은 양념을 하야 그 고기를 삶아낸 국에 넣어 놓았으니 과연 얼마나 맛이 있겠습니까”라고 감탄을 하였다. 1921년판 방신영(1890~1977)의 <조리요리제법>에서는 별도로 편육 조리법을 언급하지 않은 채, 국수비빔에서 “국수를 더운 물에 헤여가지고 그릇에 담은 후 맛있는 무김치나 혹 나박김치와 배와 편육과 제육편육을 채 쳐서 넣고 잠깐 섞어가지고 또 기름 치고 미나리를 기름에 볶아 썰어 넣고 부비여 대접에 담은 후 여러 가지 채친 것과 알고명 채 친 것과 또 표고버섯 석이들을 채쳐 기름에 볶아서 위에 뿌리나리라”고 했다. 냉면에도 “편육과 제육편육을 채쳐 넣고”, 심지어 동치미국냉면에도 “무와 배와 유자를 얇게 저며 넣고 제육 썰고 계란 부쳐 채쳐 넣고 호초 실백자를 넣어 먹나니라”고 했다. 아마도 편육은 업진편육이 분명해 보인다.

이용기는 그의 책에서 ‘제육편육’을 언급하면서 괄호 안에 ‘저육(猪肉)’이라고 별도 표기를 해 두어 그것이 돼지고기임을 확인시켜준다. “제육은 여러 가지가 편육으로 쓰나니 대가리가 으뜸이 되는 것은 껍질과 귀와 코가 다 각각 맛이 좋고 그 다음에는 유통이 좋고 발목은 팔진미에 든다 하고 좋아하나 질긴 심줄이 발목에는 있고 발목 하나에 뼈가 녹두반짜개(녹두를 반으로 짜갠 것) 같은 것이 다 있어서 수효가 스물여섯 개가 된다고 하며 맛도 별양 좋지 못하고 먹기에도 괴롭고 도리어 갈비가 맛이 좋으니 도야지를 시루에 쪄야 맛이 좋으니라.” 곧 돼지머리편육이 가장 맛이 좋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다. 보통 서울이나 남부지역 사람들은 이 제육편육을 먹을 때 반드시 새우젓에 찍어 먹었다. 하지만 이북사람들은 소금에 찍어 먹어야 제 맛이 난다고 여긴다. 이용기는 이를 두고 이북에 새우젓이 귀해서 그렇지 않나 생각했다.

업진편육이나 제육편육은 지금도 익숙한 편육이다. 이에 비해 이용기가 언급한 쇠머리편육 먹는 법은 매우 특이하다. “쇠머리를 무르게 하여 크게 썰어 여름에 냉수에 얼음 넣고 쇠머리조각을 넣고 장과 파와 깨소금·고춧가루·겨자 등물을 넣고 풋고추를 쪼개어 넣고 국물을 떠먹고 고기는 초장에 찍어 먹되 열무김치와 곁들여 먹으면 합주(여름에 마시는 찹쌀로 담근 탁주) 술안주에 상등 되나리라.” 이러니 조선요리옥에서 편육은 술안주로 인기가 높았다.

앞의 <시의전서·음식방문>에서도 보았듯이 양지머리는 숙육의 재료 중 으뜸으로 꼽혔던 식재료였다. 이용기 역시 양지머리편육을 네 가지 편육 중에서 가장 먼저 꼽았다. “양지머리는 차돌박이가 좋다하나 단단하고 고소할 뿐이요 가운데는 뻣뻣하여 질기고 맛이 없으며 뒤쪽에 흐들흐들한 것이 구수하고 맛이 제일 좋으니 풀잎처럼 썰어서 모숨(한줌 안에 들 만한 분량)째 담고 초장에 찍어 먹나니 통김치나 깍두기에 곁들여 먹는 것도 매우 좋으니라. 또 곤쟁이젓에 찍어먹는 것이 더욱 좋으니라”고 했다. 오로지 양지머리편육만이 그 자체로 훌륭한 일품요리가 되었다. 고종이 1865년 음력 10월2일 중건된 의정부에서 잡수셨던 편육도 분명 양지머리편육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요사이 사람들은 편육하면 돼지고기로 만든 것이고, 수육하면 쇠고기로 만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하다. 수육은 숙육이란 한자어를 발음하기에 좋도록 만든 민속어휘이다.

편육과 비슷한 음식이름으로 요사이 유행하는 것은 ‘보쌈’이다. 본디 ‘보쌈’은 삶아서 뼈를 추려낸 돼지 따위의 머리고기를 보에 싸서 무거운 것으로 눌러 단단하게 만든 뒤 썰어서 먹는 음식이라는 주장(박갑수, ‘팔자땜 보쌈-보(褓)’, <한글한자문화> 114, 2009)도 있다. 앞의 <시의전서·음식방문>에도 나오듯이 보자기에 싸서 눌렸기 때문에 ‘보’가 붙고 이것을 배추김치에 싸서 먹기에 ‘쌈’이 되었다. 지금은 삼겹살을 주로 사용하지만, 본래는 이용기가 제육편육에서 밝혔듯이 돼지머리고기가 많이 쓰였다. 1966년 7월28일자 동아일보에서는 돼지 값이 폭락했다는 소식을 알렸다. 그런데 그 이유가 역설적이다. “미국 잉여농산물의 도입량이 줄어들어 밀기울 값이 올랐기 때문이다. 정부가 돼지를 기르라고 장려했고 예방 주사약의 발달로 전염병의 위협은 적어졌기에 돼지 식구는 불어났지만 먹이기가 큰일이다. 비싼 사료로 길러야 사료 값도 안 나온다고 마구 방매한다고 한다. 한 달 전에 3천원씩 하던 것이 지금은 반값에 매매된다고(경기도 이천의 경우).”
일명 ‘보쌈집’의 유행 역시 그다지 오래되지 않았다. 대체로 1980년대 중반 이후이다. 편육 재료의 대명사였던 쇠고기가 그 자리를 돼지고기에 넘긴 때도 대체로 이즈음이었다. 알다시피 돼지고기는 남한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었다. 한약을 먹으면서 돼지고기를 먹으면 머리카락이 희어진다는 소문, 돼지고기에 기생충이 있어 잘못 먹으면 죽게 된다는 속설, 더욱이 돼지는 소와 달리 사람의 먹을거리를 함께 먹기 때문에 경쟁자이기도 했으니. 쇠고기 값의 폭등을 막기 위해 1970년대 초반 이후 정부에서는 식품학자와 조리학자까지 동원하여 끊임없이 돼지고기의 영양과 조리법을 홍보했다.

결국 1980년대 초반 이후 돼지고기 소비량은 쇠고기를 넘어섰다. 돼지보쌈의 유행도 알고 보면 이와 같은 정책의 결과였다. 기름기를 빼고 온갖 약재로 삶은 제육편육의 변신인 돼지보쌈은 분명 영양가 많은 음식이다. 더욱이 배추김치와 함께 곁들여 먹으니 일품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 뒤에는 국민의 입맛도 관리하는 정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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