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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민 소액대출로 노벨평화상 유누스의 굴욕
최희진 기자 dais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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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방글라데시 그라민은행 총재 결국 해임

빈곤층을 위한 마이크로파이낸싱(무담보소액대출)의 창시자로 노벨평화상을 받은 무하마드 유누스 그라민은행 총재(71·사진)가 불명예 퇴진의 위기를 맞았다.

방글라데시 중앙은행인 방글라데시은행은 표면적으로 관련 법 위반을 이유로 그를 해임했지만, 이면에는 방글라데시의 복잡한 정치 사정이 깔려 있다. 그라민은행이 국제사회의 지원금을 자회사로 빼돌린 의혹이 불거지면서 그의 초심이 변한 것 아니냐는 의심의 눈초리도 있다.

방글라데시은행은 지난 2일 유누스를 60세인 민간은행장의 정년을 지키지 않았고 2000년 총재직에 재임명될 때 정부의 사전 승인을 받지 않았다며 그를 총재직에서 해임했다.

하지만 실제 정년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현지 풍토를 고려해 볼 때 이는 핑계라는 해석이 나온다. 많은 외신들이 유누스가 2007년 새 정당 창당을 발표하고, 기존 정치권을 비난한 것이 셰이크 하시나 방글라데시 총리로부터 미운털이 박혔기 때문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유누스의 대중적 인기와 이용자가 900만명에 달하는 그라민은행의 규모도 집권세력을 불안케 한 것으로 분석된다. 미국 워싱턴 소재 세계개발센터의 연구원 데이비드 루드먼은 “하시나 총리는 자신도 노벨평화상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다”면서 “유누스를 잠재적인 정치적 라이벌로 여기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하시나 총리가 “유누스가 가난을 경감시킨다는 명분으로 빈민들의 피를 빨고 있다”고 비난한 대목은 유누스가 노르웨이 정부로부터 받은 지원금 1억달러 중 9600만달러를 자회사로 전용했다는 의혹과 관련이 있다. 이 혐의는 노르웨이 측의 조사 결과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방글라데시 최대 이동통신사인 그라민통신과 그라민폰, 그라민인터넷 등 25개 자회사를 거느린 거대 재벌로 성장한 그라민은행과 유누스가 빈민구제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잿밥’에만 관심이 있는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 이런 의혹은 일부 소액대출 사업자들이 사채와 다름없는 고금리로 돈을 빌려줘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건과 맞물려 발생했던 것과도 무관치 않다.

유누스가 물러날 경우, 국제사회의 지원이 줄면서 소액대출자들에게 엉뚱하게 불똥이 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 영국 일간 파이낸셜타임스는 사설에서 “유누스의 해임은 그라민은행과 무담보 소액대출 산업 전체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유누스는 3일 현지 법원에 자신의 해임결정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제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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