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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사과 “내 글 속 ‘분노의 실체’ 들여다보고 싶었다”
글 이영경·사진 김세구 선임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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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첫 단편집 ‘영이’ · 경장편 ‘모래의 시’ 낸 김사과

김사과(26) 소설의 구성성분에 대해 말해보자. 분노 30%, 폭력 30%, 공포 20%, 자아분열적 광기 20%. 구성성분을 보면 김사과의 소설을 읽는 것이 그다지 유쾌한 독서체험이 되지는 않으리라고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렇다면 불편과 불쾌를 감수하고 김사과의 소설을 읽어야할 이유는 무엇일까. 왜 문단은 김사과에 대해 ‘문제아’ ‘돌연변이’ 등의 칭호를 붙이며 주목하는 것일까.

김사과의 첫 번째 소설집 <영이>(창비)는 그에 대한 충실한 답이 되어줄 것이다. 이미 발표한 장편소설 <미나>, <풀이 눕는다>에서 친구를 살해한 여고생, 젊은 청춘의 극단적 사랑을 그려내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낸 작가가 2005년부터 차곡차곡 써내려온 8편의 단편을 모았다.

김사과의 소설에는 예외없이 극단적인 폭력이 등장한다. 등단작 <영이>에서 술을 먹는 아빠는 욕설을 늘어놓는 엄마를 향해 밥통을 던지고 엄마는 삽으로 아빠를 ‘개 패듯이’ 폭행해 살해한다. <이나의 좁고 긴 방>은 어떤가. 대학생 이나는 샌들을 또각거리며 아무렇지 않게 할머니를 목졸라 죽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이상한 일이 벌어지는 오늘은 참으로 신기한 날이다>에서 잘나가는 기업체의 엘리트 사원은 어느날 갑자기 식당 할머니와 아이를 살해하는 ‘묻지마 살인’을 저지른다.

“소설을 쓸 당시에 세상에 대해, 나 자신에 대해 화가 많이 났던 것 같아요. 그러나 분노가 어떤 것인지는 모호하고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그것을 통제하지 않고 풀어낸 다음 그것이 어떤 것인지 들여다보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잘 들여다보면 분노의 목적은 알 수 없지만 분노의 원인은 알 수 있다. 그것이 잘 드러나는 작품이 <이나의 좁고 긴 방>과 <움직이면…>이다. 비싼 등록금을 내며 명문 사립대에 다니는 이나는 대학이 주입하는 ‘야망과 비전’과 자신의 현실 사이에서 괴리를 느끼며 “나는 서울에 있는 유명한 사립대학의 학생에게 어울리는 야망도 비전도 없고 매일같이 두부공장에서 일하는 어두운 미래를 예감하며 괴로워할 뿐이다”라고 말한다.

그러나 사회에서 주입하는 야망과 비전을 실현하더라도 분노는 사라지지 않는다. 엘리트 인생을 살아온 대기업 사원은 어느날 알 수 없는 분노와 동료를 죽이고 싶다는 충동에 시달린다.

“가끔은 나 자신이 모든 빛을 투과시키는 얇은 쎌로판지로 생각된다. 나는 타인의 욕망을 대리한다. 그것에 최적화된 내 자아는 점점 더 얇고 투명해져만 간다.… 쎌로판지가 되기엔 너무 두껍고 또 인간이 되기엔 너무 얇은 뭔가다. 그 뭔가가 날 화나게 한다. 주위의 모든 것이 내 분노의 원인이다.”(190쪽)

사회시스템에서 도태될지도 모른다는 공포, 시스템 안에서 짓눌린 자의식이 내지르는 비명이 바로 김사과 소설의 폭주하는 폭력과 분노의 근원인 것이다. 이것이 김사과의 소설을 문제적으로 만든다. 김사과는 폭력과 분노와 광기를 통해 자본주의 사회 시스템의 모순과 그를 내면화한 인간의 비틀린 정신세계를 폭로한다.

“옥스퍼드 대학에 유학간 친구에게 명문대에 다니는 엘리트들이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애써왔기 때문에 자기가 가진 걸 빼앗길까 두려워하고 공포심이 많고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엘리트라는 사람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달리 원초적 공포심에 사로잡혀 일생을 흘려보낸다는 것을 써보고 싶었습니다.”

김사과는 소설집 출간과 함께 계간 문예지 ‘세계의 문학’ 겨울호에 경장편소설 <모래의 시>를 발표했다. 서울에 온 조선족 매춘부와 영국인 불법체류자의 이야기를 통해 개인의 정체성 혼란과 타자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서울의 모습을 그렸다. 독일 베를린에서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머물며 스스로 ‘이방인’이 되어 쓴 소설이다.

“글을 처음 쓰기 시작했을 때 내가 가진 문제의식을 틀 안에 넣어서 형상화하기 전에 늘어놓고 싶었다면 지금은 문제의식을 점점 성숙한 형식으로 형상화해나가는 과정에 있는 것 같아요.”

스물 한 살의 어린 나이에 등단, 세상에 대한 분노를 날 것의 폭력과 광기로 거칠게 뿜어냈던 김사과의 소설은 진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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