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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기행](24)소래포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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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어시장… 소래철교… 추억은 향수가 되어

25일 아침부터 비가 추적추적 내렸다. ‘툭, 툭.’ 가으내 힘을 다한 나뭇잎들은 그 마지막을 빗방울과 함께 하고 있었다. 푸르렀던 시절을 뒤로 한 채 그렇게 땅바닥으로 떨어졌다.

오후 3시 무렵 고깃배들이 포구에 들이닥친다. 노인네의 가래 끓는 소리를 연상시키는 엔진음이 포구에 가득하다. 비좁은 부두에 뱃머리를 들이대는 배들의 행동거지는 제법 날렵하다. 낡은 배들이 토해낸 시커먼 연기가 포구의 새우젓 냄새와 버무려진다.


명암을 드리운 하늘은 빛바랜 사진을 생각나게 했다. 아련한 기억 속 한편에는 소래포구가 자리잡고 있다. 친구들과 놀이터삼아 자주 뛰놀던 곳이 바로 소래포구였다. 폐염전에서 뛰놀다 지칠 때면 포구에서 바다를 보며 높아진 심박수를 진정시켰다.

스치는 바닷 바람은 송글송글 맺힌 땀방울을 시원하게 훑고 지나갔다.해가 떨어져 어둑해지면 고깃배들도 갯벌 위에 살포시 몸을 기댄 채 휴식을 청하고 있었다. 여기저기 낡고 때묻은 고깃배들은 할아버지처럼 마른기침을 내뱉을 것만 같았다.

배를 댄 고깃배들이 갓잡아온 생새우들과 잡어가 담긴 바구니를 줄에 매달아 올리고 있다.


앞바다와 달리 소래포구 어시장은 활기로 가득했다. 싱싱한 해산물을 팔려는 상인들과 이를 사려는 사람들간 흥정 소리는 맘에 드는 장난감을 두고 보채는 아이와 이를 달래는 어머니 마냥 시끌벅적했다.

논현 지구를 지나 소래포구로 향했다. 기억 속의 소래포구를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다. 공영 주차장에 차를 대고 소래 어시장으로 들어갔다. 짭쪼름한 바닷내음이 피부에 와 닿았다. 어시장 옆 샛길로 빠졌다. 계단을 오르니 눈앞에 소래 철교가 나타났다.

“야, 너 거기 건너지 못하면 우리 가방 들어.”

1995년 나는 소래 철교 한복판에 서 있었다. 친구들과 종종 소래 철교 건너기 내기를 하곤 했다. 겁이 많던 나는 늘 패자였다. 침목 사이로 흐르는 바다를 볼 때면 오줌을 지릴 것 같았다. 절반도 못 가 돌아올 때면 친구들은 웃으며 나에게 혀를 살짝 내밀었다.

1937년 일본이 서해안에서 생산되는 소금을 인천항을 통해 반출할 목적으로 만든 소래 철교는 인천과 수원을 잇던 협궤열차 교량이었다. 그러던 중 1995년 경제성이 낮아져 협궤열차 운행이 중단되면서 사람들에게 개방됐다. 어떤 이는 여자친구에게 용감함을 과시하기 위해, 어떤 이는 스릴을 즐기기 위해 소래 철교를 건넜다.

주말에 김장철까지 겹쳤다.새우를 파는 노점 아낙네는 전화받을 손조차 옆가게 신세를 져야 한다.


현재는 사고 방지를 위해 침목 위로 철판을 덧대고 옆으로 펜스를 쳤다. 예전만큼의 스릴은 사라졌지만 바다를 건너는 낭만은 살아 있었다. 말갛게 속살을 내놓은 갯벌과 그 틈으로 흐르는 바닷물도 그대로였다.

연간 1000만 명 이상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소래 철교는 관광 명소로 이름이 높다. 하지만 최근 소래 철교 철거 이야기가 나오고 있어 지역 상인들은 물론 이곳을 찾는 이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최근 한국철도시설공단이 안전을 이유로 소래 철교 철거를 검토 중인 가운데 소래 철교와 인접한 시흥시에서 불법 주정차 문제 등을 이유로 철교 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인천시는 관광 명소인 소래 철교를 존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문화재 등록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시흥시와 합의를 이루지 못할 경우 소래 철교는 2015년 철거될지도 모른다.

지역 상권에 큰 도움을 주는 소래 철교의 철거를 지역 주민들은 바라지 않는다. 주민들은 소래 철교가 영원히 남아 주길 바라고 있다. “여기가 어떤 곳인데. 인천시민들은 물론이고 전국 각지 사람들이 이곳에서 추억을 쌓았지. 없애지 말아야 할 텐데.”주민 김옥민씨(56·여)는 안타까워했다.

아쉬운 마음에 김씨와 막걸리를 한 잔 나눠 먹고 자리를 떠났다. 어시장으로 향했다. 이곳은 여전히 활기찼다. 김장철을 맞아 생새우와 새우젓을 사려는 주부들, 연인이나 가족과 저렴한 가격에 회를 즐기려는 사람들 등 이곳은 말 그대로 ‘사람 반 물고기 반’이었다. 우럭, 광어, 도미 등 백열전구의 빛을 받은 생선들은 선발 대회에 나온 양 제각기 싱싱함을 뽐냈다. 생선과 눈이 마주친 사람들은 상인들과 흥정을 벌였다. “3만 원에 줘요.” 한 연인의 부탁에, 상인은 “기분이다. 내가 우럭도 한 마리 서비스로 줄게”하며 화끈하게 화답했다. 말만 잘 하면 공짜로 준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소래 어시장의 인심은 후했다.

소래철교를 두고 말들이 많다. 고깃배들이 그 교각 사이를 능숙하게 드나든다. 주말 소래를 찾은 시민들에게 철교 위를 걸을 수 있는 낭만과 자유쯤은 남겨놔도 좋을 듯하다.


어시장에서 기분 좋게 쇼핑(?)을 마친 사람들은 하나둘 인근 양념집으로 들어가 회를 즐겼다. 어시장에서 장만한 생선은 양념집에서 저렴한 가격에 싱싱한 채소와 함께 즐길 수 있다. 회를 뜨고 남은 생선뼈는 이곳에서 훌륭한 매운탕으로 재탄생되기도 한다. 주머니 사정이 넉넉지 못한 젊은 연인들은 이곳에서 싼 가격에 고급 횟집 부럽지 않게 서해를 맛볼 수 있다. 포구 인근에 자리를 깔고 앉아 회와 함께 이야기 꽃을 피우는 사람들과 이도 여럿 보였다. 시원한 바다 바람과 함께 하는 술 자리는 그 어디에서도 쉽게 맛볼 수 없다.

소래포구를 터전으로 삼아 살고 있는 어민들도 일과가 끝나면 이곳에서 소주 한 잔을 기울이며 하루를 정리한다. 팔고 남은 잡어를 안주삼아, 그렇게 하루를 정리한다. 그러나 요즘 어민들은 술맛이 쓰단다. 인천경제자유구역청에서 인근 송도 11공구 갯벌 매립 사업을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11공구가 매립되면 유속과 갯벌의 변화는 불가피하다. 당연히 조업에 차질을 빚는다. 특히 조개 등 맨손 어업에 종사하는 어민들은 이곳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우리 같은 어민들이 무슨 힘이 있나. 정부에서 하겠다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걱정이야.” 어민 김선규(54)씨는 말했다. 삼삼오오 모여 술잔을 나누던 어민들은 맥주잔에 소주를 따라 연거푸 마셨다. 술이 삶의 고민을 씻어 준다지만 이들의 고민은 계속된 술자리에도 쉽게 가시지 않는 듯했다. “우리 아버지 때부터 이곳에서 조업을 해왔어. 그런데 이젠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 피해가 미비하다고 하는데 그걸 어떻게 믿을 수 있어야지. 우리 어민들은 바다만 보고 사는데…” 술잔을 주고 받으며, 어민들의 고민은 그후로도 한동안 계속됐다.

나오는 길에 어린 시절 아버지가 사주셨던 새우튀김을 사 먹었다. 살이 통통 오른 새우튀김의 맛은 예전에 맛본 그것과 똑같았다. 반짝반짝 빛나는 네온사인 옆으로 어선은 갯벌에 몸을 담고 잠을 청하고 있었다. 상인들과 소비자간 흥정은 계속됐고 사람들은 어시장의 활기를 안주삼아 하루를 정리하고 있었다.

지금의 소래 포구는 어린 시절 뛰어놀던 바로 그 포구와 달라진 게 없었다. 그러나 개발 논리 속에서 변화를 준비하고 있었다. 소주를 한 잔 더 걸쳤다. 앞에 놓인 새우는 불편한지 몸을 말고 옆으로 누워 있었다.

글 이재필기자·사진 김순철기자 ljp81@kyunghyang.com

◆가볼 만한 곳

소래습지생태공원은 갯벌과 갯골, 폐염전을 다양한 생물군락지 및 철새 도래지로 복원해 놓은 곳이다. 생태전시관, 자연학습장, 염전학습장, 갯벌체험장 등으로 구성된 소래습지생태공원에서는 습지 내 각종 해양생물을 관찰하고 천일염을 생산했던 시설물과 자료를 엿볼 수 있다. 특히 염전학습장의 경우 오후 4시에 직접 가래질을 하며 소금을 채취하는 체험을 맛볼 수 있다. 갯벌체험장에서는 맨발로 갯벌에 들어가 조개 등을 캐볼 수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장한다. 단 매주 월요일 및 법정공휴일 다음 날은 휴관한다.

인천시 유형문화재 제6호인 논현포대는 1879년에 축조됐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겪고 나서 방어시설을 강화할 목적으로 경기 연안의 군사시설을 확충하면서 구축됐다. 분수대, 잔디밭, 산책로 등을 갖춘 근린공원이 함께 자리잡고 있어 가족과 나들이 가기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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