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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구기행](18) 서구 세어도 선착장
김지환기자 kjh1010@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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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자연 그대로의 모습 지켜온 ‘오지의 섬’

갑판 위, 살이 두툼하게 오른 배추 두 포기가 검은 비닐봉지 밖으로 새파란 이파리를 드러내 놓고 앉아 있었다. 봉지에 고이고이 담긴 간장과 식초, 고무장갑도 라면박스 칸칸이 열을 맞춘 채 출항을 기다리고 있었다. 만석부두 행정선에 몸을 실은 아주머니들은 하나같이 배가 불룩한 종이박스를 머리에 이고도 가벼운 발걸음으로 흥겨운 콧노래를 불렀다.

세어도의 주민 대다수는 새우, 농어, 숭어를 잡고 바지락을 캐며 먹고 살지만 수입은 늘 제자리 걸음이다. 세어도 선착장 앞에 띄워진 배 10여척이 하루종일 그 자리만 지키고 있다.


“많이도 사셨네. 섬에 들어가 주민들 모아놓고 잔치해도 되겠어.”

오랜만에 단골 미용실을 들러 머릴 볶아서인지, 마음만큼이나 한가득 담은 생필품 때문인지 아주머니들은 배에 오르자마자 저마다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냈다.

“시장에서 샀는데 하나씩 가져” “오늘은 육지손님을 더해 모두 4명이 전부네” “자자, 출발합시다.”

한 아주머니가 꼬깃한 비닐봉지에 담아둔 스타킹을 나눠주자 몇몇 아주머니들은 “섬에선 스타킹 신을 일이 없는데”라고 내숭을 떨면서도 입가에는 가득 미소를 머금었다.

마침내 배는 부두를 떠났다. 시간을 낚던 낚시꾼들이 시야에서 멀어지자 아낙네들은 그제야 섬에 돌아가는 기분을 느끼는 듯했다. 작약도 옆으로 육중한 몸매를 자랑하는 유조선을 지나자 길게 양팔을 늘어뜨린 영종대교가 한눈에 들어왔다. 만석부두를 출발한 지 30여 분이 지나자 어느새 목적지인 서구 세어도 선착장이다.

출항을 준비하는 서원호 선장.


선착장까지 마중 나온 강아지 두 마리는 꼬리를 흔들며 아주머니들을 반겼다. 지도에서조차 잊혀진 작은 섬 세어도엔 이렇게 20여 명의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살고 있었다.

“어서 와. 놀러왔어? 밤엔 고라니, 살쾡이 때문에 작물에 그물을 다 쳐놔야 돼. 산에 가려면 꼭 장화 신고 가. 뱀에 물릴지도 모르거든.”

세어도 선착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작은 언덕 위에 오르자 바람을 쐬던 김종수씨(79)가 낯선 이방객을 걱정하며 세어도 자랑을 늘어놓았다. 80년대 말 부인 김정희씨(80)의 요양을 위해 섬에 들어온 뒤로 그에게 남아 있는 것은 넉넉한 인심뿐이다.

세어도 앞바다를 바라보자 김씨가 하소연을 늘어놓는다. 10여 년 전만 해도 30여 척의 배들이 세어도 선착장 앞바다를 가득 메웠지만 모두 옛말이 됐단다. 바다 위로 다리를 놓고 지척으로 보이는 영종도 땅이 개발되면서 세어도 앞 바다엔 모래가 쌓이고 물길이 바뀌면서 더이상 고기들이 그물에 오르지 않는다.

세어도 전경.


“배가 하루에 한 번씩밖에 다니지 않으니 육지 사람들도 보기가 드물어. 눈 앞에 보이는 영종도에 선착장을 만들어 주면 좋을 텐데 그게 말처럼 쉽지가 않네.”

김씨의 입에서 자연스럽게 한숨이 새어 나온다. 세어도 주민들의 숙원사업이 차일피일 미뤄지면서 근심이 쌓인 모양이다. 주민들은 눈 앞에 보이는 서구 육지에 선착장을 만들고 싶었지만 해안선 철책 문제로 수십 년째 고립된 생활을 해왔다. 최근엔 해경·군부대와 원만한 합의점을 찾았지만 다시 부대시설 부지 확보 문제가 불거지면서 수개월째 제자리를 맴돌고 있다.

사실 세어도 주민들의 유일한 교통수단은 하루 단 한 차례 운행하는 행정선 서원호(22t급)뿐이다. 서구 원창동의 앞 글자를 하나씩 따 만든 행정선은 불과 지난해까지만 해도 10여 명이 타기도 벅찬 8.5t급의, 그야말로 일엽편주였다. 1995년까지 세어도, 신도, 시도, 장봉도를 잇는 큰 배편이 있었지만 이용객 감소로 사라지면서 행정선이 등장했다. 배편이 없으니 대다수 주민들은 육지에 작은 전세방을 얻어놓고 섬과 육지를 오가며 불편한 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세어도 민가.


“비가 오나 눈이 오나 365일 배를 띄워야 합니다. 주민에겐 서원호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니 하루도 쉴 수가 없는 거죠.”

세어도에서 태어나 4대째 섬 생활을 이어온 서원호 선장 채수정씨(54)도 할 말이 많다. 서원호의 유일한 선원인 부인 김명신씨(51)와 배를 청소하고 관리하는 것도 힘에 버겁다. 어떤 날은 하루 이용객이 한두 명에 불과할 때도 있지만 그래도 어업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보단 구청에서 다달이 월급을 받는 게 차라리 낫다.

물길이 바뀌면서 고기도 좀체 그물에 걸리지 않는 탓에 요즘 같아선 배 기름값 대기도 빠듯한 현실이다. 그나마 세어도 주민들이 반찬값이라도 벌 수 있었던 건 가을철에 새우로 담근 추젓 덕분이다. 새우철이 아닐 땐 주로 농어 등을 잡아 강화도 길상면 황산도어판장에 내다 팔지만 이마저도 신통치는 않다. 수협과 서구청 등이 섬 주민 수입증대를 위해 세어도에 어촌·농촌체험마을을 꾸며놨지만 발길이 끊긴 지도 오래다.

“전엔 카페리호로 하루 수십 명씩 관광객을 실어 날랐는데 계약기간이 끝났는지 요즘은 외지에서 찾는 발길이 뚝 끊어졌어요. 섬엔 사람도 없고 일손이 달리니 농촌체험마을을 위해 고구마, 감자를 심고 싶어도 엄두를 못 내고 있죠.”

시부모를 모시기 위해 남편 김형태씨(54)를 따라 세어도에 들어온 장혜숙씨(52)는 세어도 주민들의 영세한 삶이 늘 걱정이다. 2년 전까지만 해도 전기도 들어오지 않던 지난날을 생각하니 관할 관청이 원망스럽기까지 하다. 지금도 150m 깊이로 지하수를 파서야 겨우 식수를 얻을 만큼 생활은 많이 낙후됐지만 이곳 주민들은 그래도 세어도 만한 곳이 없다고 입을 모았다.

세어도에서 태어나 평생을 섬에서 살아온 최영식씨(71)는 “도시와 불과 몇 분 거리에 있지만 이곳은 천혜의 자연이 살아 숨쉬는 곳”이라며 “생활은 불편하지만 공기만큼은 어느 깊숙한 산골 못지않게 깨끗하다”고 자랑을 늘어놓았다.

최씨와 함께 새빨간 고추를 말리던 부인 이경자씨(62)도 남편을 거들었다. 이씨는 “우리 마을은 대문을 활짝 열어놓을 만큼 범죄 없는 깨끗한 곳”이라며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주민끼리 서로 나누면서 사이좋게 지낸다”고 말했다.

주민들 말대로 깊은 밤 세어도의 밤하늘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창문 너머 알록달록 조명을 켠 영종대교를 보고 있으면 마치 칠성급 호텔의 야경을 바라보는 듯한 착각에 빠져 들었다.

이젠 섬에 유일했던 초등학교도 사라졌고 젊은 사람들도 모두 육지로 빠져나간 지 오래지만 변하지 않은 게 있다면 깨끗한 자연과 푸짐한 마을 사람들의 인심이다.

“다음에 올 땐 가족들하고 꼭 같이 와. 밭에서 기른 나물과 바다에서 잡은 물고기로 맛있는 식사 한 번 대접할 테니 말이야.” 섬 사람들은 육지 이방인을 실은 배가 시야에 가물거릴 때까지 손짓을 하며 지켜보고 있었다. 짧은 만남, 아쉬운 이별이었다. 글·사진 김지환기자

세어도는?…여의도 20분의 1 크기주민은 25가구 36명
세어도는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서구 원창동에 있다. 최근 동 통합이후 서구 신현원창동으로 재편됐다.

영종대교 북쪽에 있으며 면적 408㎢(12만3420평)로 여의도의 20분의 1 정도며 해안선 길이는 4.2㎞에 이른다.

학꽁치를 이르는 말로 가늘세(細) 고기어(魚)자를 써 세어도라고 붙여졌다. 사람이 산 지는 약 200여 년 됐으며 2009년 현재 25가구 36명이 주민등록 돼있다. 하지만 육지와 교통편이 나쁜 관계로 실제 섬에 거주하는 주민은 20명을 밑돈다.

세어도는 인천시에서 가장 늦게 전기가 공급돼 마지막 남은 ‘오지의 섬’으로 불려왔다. 2007년 전기가 들어오기 전까지 50kW짜리 자가 발전기 1대를 구입해 오후 5∼11시 제한적으로 전기를 사용해 왔다.

섬엔 송현초등학교 세어분교가 있었지만 지금은 사라지고 학교터에는 새로 마을회관이 지어졌다.

교통편은 동구 만석동 만석부두에서 출발하는 행정선 서원호가 유일하며 하루 한 편씩만 운행된다. 출발시간은 정해져 있지만 간혹 변경되는 경우도 있다. 서구청 홈페이지 생활정보란이나 세어도 통장(032-831-1263), 서원호 선장(011-385-5140) 등을 통해 배시간을 확인할 수 있다.

섬 주민 대부분이 공동조업을 통해 숭어, 농어, 새우, 바지락 등을 잡아 생계를 유지하지만 관광·숙박시설을 갖춰놓고 어촌·농촌체험마을을 운영하기도 한다. 민박은 1일 3만 원 안팎이며, 단체관광객의 경우 1일 7만 원으로 샤워시설과 주방시설을 갖춘 현대시설의 마을회관을 이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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