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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전 성 원/황해문화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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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영화제 13개 부문 후보에 오른 브래드 피트 주연의 영화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가 개봉을 앞두고 있다. 스코트 피츠제럴드의 단편 소설을 원작으로 만들어진 영화인데 젊어지고 싶다는 부질없는 욕망에 사로잡히기보다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할 수 있는 짧은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충고가 담겨 있다고 한다.

80세의 노인으로 태어나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더 젊어지는 주인공 벤자민 버튼처럼 지난해 건국 60주년을 맞이했던 대한민국의 시간도 거꾸로 흐르는 것 같다. 이제 며칠 후면 이명박 대통령 취임 1주년인데 그 사이 참으로 많은 일들이 벌어졌다. 대통령 취임 보름 전에 국보 1호 숭례문이 불탔다. 대통령인수위는 고소영 강부자 내각이란 비판 속에 영어몰입교육과 ‘어륀지’라는 유행어를 남겼다. 취임 직후 미국을 방문해 추진한 한·미쇠고기협상 결과에 분노한 100만 시민들이 ‘국민의 건강권과 검역주권’ 수호를 위해 촛불을 들고 거리로 나섰다. 처음엔 미국의 선물이라 말했던 대통령은 취임 100일 만에 두 차례나 사과하고 재협상에 나섰다.

서브프라임모기지사태와 리먼브라더스의 파산이라는 미국발 금융 위기로, 외국계 자본이 빠져나가면서 주가와 환율이 곤두박질쳤다. IMF외환위기를 떠올리게 만드는 경제위기 속에서도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꿋꿋하게 환율방어에 나섰고, 환율이 천오백선을 오락가락하며 주식 펀드가 반토막나자 자살하는 사람이 속출했다. 엄격한 상호주의를 내건 대북강경정책은 북핵 위기라는 어려움 속에서도 십 수 년 동안 지켜왔던 남북관계를 급속도로 냉각시켰다. 100일 동안 진행된 삼성 특검 수사는 아무 것도 밝히지 못했고, 세밑 국회는 중점법안 처리 강행을 놓고 극한 대립까지 치달았다.

온 나라가 경축 분위기로 떠들썩할 만도 했건만 건국 60주년과 광복 63주년 행사는 건국 초기처럼 보수와 진보 둘로 나뉘어 치러졌다. 국가경축일에 물대포가 등장했고, 역사학자와 저자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역사교과서가 이념편향 논란 속에 개정되었다. 취임 초부터 자리를 비워달라는 압력에 시달린 기관의 수장들은 불명예 퇴진했고, 방송국엔 예전처럼 사장들이 낙하산을 타고 내려왔다. 검찰총장은 새해 벽두부터 80년대 공안정국을 떠올리게 만드는 신년사로 간담을 서늘케 하더니 인터넷경제대통령이라던 미네르바가 허위사실유포죄로 긴급체포되었다. IT강국은 세계 언론의 조롱거리가 되었다.

대한민국의 시간은 거꾸로, 거꾸로 돌더니 철거민 5명과 경찰 1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대참사를 일으켰다. 거꾸로 흐르는 시간은 지난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의 발표 30주년 기념 낭독회에서 이 책이 지금까지 현재성을 가지고 읽힐 줄 몰랐다던 조세희 선생을 다시 용산참사의 현장으로 불러냈다. 그는 “이렇게 비인간적인 방법으로 동족을 괴롭혀 선진국이 된 예는 인류 역사상 단 한 번도 없었다”며 30년 전보다 더욱 잔인하고 야만스러워진 대한민국의 현실을 개탄했다. 급기야는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이 “국민 분열의 죄, 역사 왜곡과 폄하의 죄, 민족 분열의 죄, 민주주의 파탄의 죄”를 물어 통치 권력의 정당성을 의심하는 상황까지 왔다.

이명박 대통령의 임기도 어느덧 5분의 1이 흘렀다. 아직까지 대통령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이들에게는 남은 시간이 만회할 수 있는 중요한 시간으로 여겨질 테고, 일찌감치 희망을 접은 이들에게는 그 시간마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의 시간일 것이다. 대한민국 국민들은 자신의 손으로 군사독재를 종식시킨 경험이 있으며 평화적으로 정권을 교체하는 과정도 이미 여러 차례 경험했다. 국민을 부정하는 권력의 시작과 끝이 어떠했는지 민주공화국의 시민들은 이제 알만큼 안다.

예전에 어느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한국 젊은이들의 병영 체험을 개그 소재로 엮은 적이 있었다. 그 코너의 유행어는 거꾸로 매달려도 국방부 시계는 간다는 말이었다. 벤자민 역시 나이를 먹을수록 외모는 더욱 젊어지지만 결국 아기가 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것처럼 거꾸로 살아도 어쨌든 시간은 가는 법이다. 이제 4년 남았다. 서로 사랑만 하며 살아가기에도 아까운 시간이지만 지금은 공화국의 근본부터 다시 성찰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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