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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번 매코맥 칼럼](6) 일본 퍼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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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정치는 두 개의 역설로 특징지워진다. 첫째, ‘보수주의자’라는 단어가 헌법을 포함해 일본의 전후 사회를 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붙여진다는 점이다. 이들이야말로 진짜 급진주의자들인데도 그렇게 불린다. 반면 일본의 전후 민주제도를 ‘유지하자’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급진주의자나 좌파로 분류된다. 둘째, 일본이 미국에 종속돼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민족주의자’로 자처한다. 그러나 일본을 미국의 이익보다 우선시하고자 하는 사람들은 ‘비(非)일본인’으로 의심 받는다.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처럼 혼란스러운 상황이다.

‘평화헌법’ 깨려는 개헌론자들

2001~2007년 고이즈미와 아베 정부가 추진했던 개혁은 일본으로 하여금 안보와 경제 분야에서 미국에 더욱 가깝게 만들었다. 2003년 고이즈미 내각 당시 일본 자위대는 미국과 ‘보수주의자들’의 요구에 따라 처음으로 분쟁 현장에 파견됐다. 당시 그들은 미국의 집단안보활동(전쟁)에 참여함으로써 훗날 일본이 더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보증해두는 데 최우선 가치를 두었다. 또 아베 정부에서 예의 ‘보수주의자들’은 미국 및 국제 자본의 일본 진출 장애물을 제거하며 일본 경제를 ‘자유화’하는 데 애썼다. 조기 총선에서 패배할까봐 전전긍긍하고 있는 후쿠다 총리조차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은 전략적·경제적으로 미국을 본보기로 삼고 있다. 미국은 지금 한 국가를 사실상 파괴하고 지역 전체를 불안정하게 하는 파멸적이고 불법적인 전쟁을 벌이고 있다. 통제되지 않는 과도한 자본주의는 세계 경제를 한 세대만에 가장 심각한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이는 미국식 의제의 지지자들을 주저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러나 일본은 그런 것 같지 않다.

평화주의와 인권, 정치적 민주주의라는 세가지 원칙을 구체화한 1946년 일본 평화헌법은 미국이 유감을 표명하고 나서야 겨우 탄생할수 있었다. 그 이후 미국은 줄곧 일본이 헌법을 수정해야 한다고 촉구해왔다. 미국이 주목하고 있는 원칙은 이른바 평화조항이라고 하는 헌법 9조다.

반세기 동안 일본 ‘보수주의자들’은 헌법 9조를 수정하거나 무력화시키려 하면서 일본을 미국의 설계에 맞게 변화시키는 데 몰두해 왔다. 그러나 의회와 국가 전체에 포진해 있는 헌법 옹호 세력 역시 강했다. ‘보수주의자들’은 9조의 해석을 완화하거나 확대하는 방법으로 9조를 꾸준히 약화시키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하지만 지금 그것은 더 이상 충분하지 않다. 일본은 2007년 인도양에 파견된 해상자위대를 철수시켰다 다시 파견하는 등 임무를 연장할 것인지 머뭇거렸다. 2005~2006년 합의된 대로 일본 내 미군 기지를 재편성하는 것과 일본이 자위대를 (도널드 럼스펠드 전 미 국방장관이 말했던 대로) ‘보이스카우트’에서 실제 전투병력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매우 더디게 진행됐다. 이에 따라 미국의 조바심은 커졌다. 일본 자위대는 명백한 법 개정이 있어야만 그들의 동맹 미국과 함께 전투할 수 있는 정규 군대가 될 수 있다. 2007년 5월 아베 총리는 의회에서 개헌 절차를 명시한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켰다. 그러나 그 탓에 그는 유권자들과 멀어졌고, 두 달 후 참의원 선거에서 패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사임해야 했다.

일본 개헌주의자들은 60년 전 일을 반복하고 있다. 현행 헌법은 미국의 강압에 따른 것이라고 비난하면서도 결국 개정에 대한 미국의 우선권을 주장하고 있는 것이다. 이 역시 ‘이상한 나라’의 역설이 아닐 수 없다.

그들은 지금 미국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두가지 전략을 취하고 있다. 단기적으로 이들은 자위대가 ‘국제 협력 활동’에 참여하도록 해외 파병을 허용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 법률이 통과되면 현재처럼 자위대가 임무에 파견될 때마다 의회의 토론을 거쳐 제한과 조건을 부가하는 ‘특별조치법’이 필요없게 된다. 장기적인 전략으로는 전·현직 의원 239명이 지난 5월1일 ‘새 헌법 수립을 위한 의원 동맹’을 결성했다는 것을 들 수 있다. 이전의 다른 조직과 달리 이 모임에는 야당인 민주당의 유력 의원들이 참여하고 있다. 개헌에 필요한 의회 3분의 2 찬성이 가능해지는 셈이다.

그러나 의회 밖의 상황은 다르다. 개헌주의자들에게는 실망스럽겠지만, 그들이 헌법 9조를 공격할수록 9조에 대한 대중들의 지지는 더 강해지고 있다. 2008년 아사히 신문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분의 2가 9조의 존속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2004년 저명한 지식인들과 공인들이 만든 ‘9조 협회’는 전국적으로 7000개 지부를 둘 정도로 커졌다. 1960~70년대 베트남전 반대 운동 당시의 풀뿌리 동원에 비견할 만한 규모다. 개헌주의자들이 헌법을 부끄럽게 여기는 반면, 9조 협회 회원들은 헌법을 세계적 모델로 선전하고 있다. 2008년 5월 그들은 ‘세계는 9조를 선택하기 시작했다’라는 슬로건 아래 도쿄 외곽에 있는 대규모 회의장에 모인 바 있다.

‘보수주의자들’은 개헌 전략을 수정하면서, 헌법적 원칙을 공개적으로 경멸하고 있다. 지난 4월 나고야 고등법원은 고이즈미와 아베 내각이 ‘국기를 내걸고’ 일본군을 이라크에 보내라는 미국의 요청에 응해 헌법을 위반했으며, 따라서 일본군의 이라크 주둔은 위헌이며 불법이라고 판결했다. 이 때 총리와 관방장관, 방위성장관, 항공자위대 항공막료장은 이 같은 판결은 일본 군대의 발전에 아무 영향도 주지 않을 것이라면서 판결을 일축했다. 법치와 권력의 분리는 그들에게 무의미한 듯하다.

헌법주의는 단지 전쟁과 평화의 문제에 관한 것이 아니다. ‘건강하고 문화적인 삶을 위한 최소한의 기준’(헌법 25조) 및 표현의 자유(21조)의 헌법적 보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와 후리타(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이어가는 청년들), ‘프레카리아트’(불안정 계급), 평화주의자들, 사회 비판자들에게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일본은 ‘육군과 해군, 공군’을 보유하지 않을 것이라는 9조의 서약이 그런 것처럼.

의회밖 국민은 ‘존속’ 절대 지지

신자유주의적 ‘개혁’이 확산되고 깊어질수록, 일본 사회가 더욱 미국화될수록, 일본 노동자 3명 중 1명은 ‘비정규직’으로 착취당하며 빈곤해지고 있다. 이들은 일하는 빈곤층(워킹 푸어)이나 ‘프레카리아트’라는 신계급을 형성하고 있다. 빈곤층과 환자들이 굶어죽고 노숙 상태로 전락하거나 인터넷 카페에서 숙식한다는 충격적인 보고서들은 일상화돼 있다.

표현의 자유와 관련해, 최근 법원은 2003년 ‘다치가와의 3인’이 자위대 군인들의 우편함 속에 ‘일본군의 이라크 파병을 반대한다’는 내용의 전단지를 투입한 것은 유죄라고 판결했다. 그들은 마치 중범죄를 저지른 범인들처럼 체포되어 75일간 구금됐다.

일본 헌법 9조(전쟁)와 25조(생계)는 긴밀히 연계돼 있을 수 있다. 2007년 후반 한 젊은 후리타가 젊은이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는 사회적 절망을 글로 발표한 적이 있다. 그에겐 오직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만이 희망이었다. 전쟁 상태에서만이 그의 상황을 개선할 수 있는 사회적 격변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번 매코백 | 호주국립대 명예교수>
<정리 | 최희진기자>

Japan Puzzle
Japanese politics are characterized by two related paradoxes: first, that the word "conservative" is usually applied to those who insist on the need to remake Japan's postwar society, including its constitution, and who in other words are actually radicals, while those who insist on "conserving" Japan's postwar
 democratic institutions are labeled radicals or leftists; and second, that those who most insist that Japan subordinate itself to the United States describe themselves as "nationalists," while those who seek to
 prioritize Japanese over US interests are suspected of being somehow "un-Japanese." It is an Alice in Wonderland confusion!
 
 The thrust of the "reforms" undertaken by the Koizumi and Abe governments between 2001 and 2007 was to bring Japan closer in line with the United States in both security and economic terms. On the former, in 2003 Japan's armed forces were for the first time sent to a theatre of conflict at US behest and
 "conservatives" since then have attached the highest priority to trying to ensure that in future Japan could do more by joining the United States in collective security actions (read: wars) as an East Asian Great Britain. On the latter, the same "conservatives" have been intent on "liberalizing" the Japanese economy by the removal of remaining obstacles to the penetration of US and international capital. Currently, Japanese politics are in a state of frozen immobility, the Fukuda government having lost control over the Upper House but too fearful of annihilation at the polls to seek a mandate. Though immobilized, however, Fukuda faces the same direction as his predecessors.
 
 The fact that the United States - the model for Japanese so-called conservatives on both strategic and economic fronts - is engaged on a catastrophic and illegal war that has virtually destroyed one major country and destabilized an entire region, and that the excesses of its unregulated capitalism have plunged the world economy into the greatest crisis in a generation, should give pause to the proponents of such an agenda; but it seems not to.
 
 The ink had scarcely dried on the 1946 constitution, incorporating the three principles of pacifism, human rights, and political democracy, before the US regretted it. Ever since then, it has been urging Japan to revise it. The principal US attention is directed to Article 9, the so-called pacifist clause.
 
 For half a century, Japanese "conservatives," intent on remaking the country to American design, sought to revise (or neutralise) Article 9, but constitutionalist forces were simply too strong, both in the Diet and in the country at large. They had to be content with steadily watering it down by widening and loosening the way it was interpreted. Now, however, that is no longer enough. As Japan wavered in 2007 over whether to renew its naval mission to the Indian Ocean, withdrawing and then resending its fleet, and as the reorganization of US military bases in Japan (agreed in 2005-2006), and Japan's conversion of its armed forces from what former Defence Secretary Donald Rumsfeld contemptuously called a "boy scout" corps to a real fighting army, both proceed far too slowly, American impatience mounted. Only with explicit revision can Japan's SDF become a regular national army (kokugun) able to fight alongside their American allies. Prime Minister Abe in May 2007 succeeded in railroading through the Diet a law spelling out procedures for such a revision. In doing so, however, he so alienated the voting public that he and his government were resoundingly defeated at the Upper House election two months later. He had to resign shortly afterwards. In another "Wonderland" kind of paradox Japanese revisionists, denouncing the existing constitution as an American imposition but insisting above all on American priorities for revision, actually replicate the events of six decades ago.
 
 They now have a two-pronged strategy to try to meet American demands. In the short term, they hope to secure passage of a permanent law to authorize the overseas despatch of Japanese Self-Defence Forces for "international cooperation activities." That would obviate the current need for a "Special Measures Law" (with attendant Diet debate and inevitable restrictions and conditions) every time the SDF is to be sent on a mission. For the longer term, 239 present and former members of the national parliament joined on 1 May in a new organization, the Diet Members Alliance to Establish a New Constitution. Unlike its predecessors, this Association incorporates prominent members of the opposition Democratic Party of Japan.
 By thus incorporating the opposition, the revision requirement of a two-thirds parliamentary majority
 becomes feasible.
 
 Outside the Diet, however, to the dismay of revisionists the more they attack Article 9 the stronger public support for it becomes, reaching two-thirds in the May 2008 Asahi opinion survey. The Article 9 Society, established in 2004 by prominent intellectuals and public figures, has now grown to have 7,000 branches
 nationwide, rivalling as a grassroots political mobilization the anti-Vietnam war movement in the 1960s and 1970s. Where revisionists are ashamed by the constitution, A9 Society members propagate it as a global model. In May 2008 they filled to overflowing a vast convention centre just outside Tokyo under the slogan "The world has begun to choose Article 9."
 
 As the "conservatives" revise their strategy for revision, they also display a disturbing contempt for
 constitutional principle. In April, when the Nagoya High Court found that the Koizumi and Abe governments had acted in breach of the constitution in consenting to US demands to "show the flag" and put Japanese "boots on the ground" in Iraq, and that therefore the Japanese troop presence in Iraq was both
 unconstitutional and illegal, the Prime Minister, Chief Cabinet Secretary, Minister of Defence, and the Chief of Staff of the Air Self Defence Forces all dismissed it, insisting that such a judgment would have no effect whatever on Japan's troop deployment. The rule of law and the separation of powers seemed to them
 irrelevant.
 
 Nor is constitutionalism just about matters of war and peace. Constitutional guarantees (in Article 25) of "minimum standards of wholesome and cultured living" and (in Article 21) of freedom of expression ring just as hollow for the irregularly employed, the freeter and the "precariat," pacifists and critics of society, as does Article 9's pledge that Japan will not possess "land, sea, or air forces." As neo-liberal "reform" spreads and deepens, further American-izing Japanese society, one in three Japanese workers is now
 exploited and impoverished as an "irregular," constituting a new class of working poor or "precariat." Shocking reports of the poor and the sick starving to death (one leaving a pathetic note saying how he longed for a rice ball…) or being reduced to homelessness or to living in internet cafes, are common.
 Relative poverty levels (within the OECD) are worse only in the United States. As for freedom of
 expression, a recent court judgement affirmed the conviction (on trespass charges) of the "Tachikawa Three" for inserting leaflets opposing the dispatch of Japanese forces to Iraq into the letterboxes of defence force staff in 2003. For their crime of leafleting, opposing a troop despatch the Nagoya court has now found to have been illegal and unconstitutional, they were arrested and held for 75 days in detention - as if they were criminals.
 
 Article 9 (war) and Article 25 (livelihood) may also be closely related. Late in 2007, one desperate young freeter published an essay that encapsulated the social despair that currently spreads, especially among young people. For him, only the prospect of a war offered hope, since only in a state of war could there be the prospect of the sort of upheaval of society from which he could expect betterment.
 
 Gavan McCormack
 
[ 개번 매코맥 칼럼 바로가기 ]
(5)북한과 시리아 사막의 괴물
(4)亞 미래의 두축, 한국과 호주 
(3) GDP의 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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