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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커피 언제 볶은거죠?”…커피잔에 부는 웰빙바람
글 이용욱·사진 우철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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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커피’로 대표됐던 한국의 커피문화. 담배연기 자욱한 다방에 앉아, 설탕과 크림을 듬뿍 넣은 ‘걸쭉한’ 커피를 마시던 게 불과 얼마 전까지 우리 커피문화의 풍속도였다. 커피 고유의 깊고 쌉싸래한 향과 맛보다는 설탕과 크림의 조합이 가져다주는 달짝지근함이 커피 본연의 맛으로 인식되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이런 한국의 커피 문화가 빠르게 변하고 있다. 양보다는 질을 따지고, 가격이 비싸도 신선한 것을 찾는 웰빙문화가 확산되면서 싱싱한 원두커피를 찾는 수요가 급속도로 많아지는 추세다. 지난해 1조8000억원으로 추산되는 전체 커피시장 매출 중 원두커피가 차지하는 비율은 20% 안팎. 원두커피의 매출은 1~2년 사이 두 배가 뛰었다고 ‘한국커피교육센터’의 홍성대 대표는 말했다.

‘고급커피의 대중화’ 현상은 눈으로도 확인된다. 생두(生豆·커피콩)를 직접 로스팅(roasting·볶는 과정)해 원두로 만들고, 이 원두로 내린 신선한 커피를 파는 ‘로스터리 커피숍’이 곳곳에 생기고 있는 게 대표적인 사례다. 꼼꼼하게 질을 평가하기보다는 간편하게 커피 맛을 본다는 콘셉트의 인스턴트 커피와 캔 커피들도 고급화 기류에 편승했다. 실제 업체들은 비싼 원료를 사용하는 프리미엄 제품들을 출시하고 있으며, 고급 이미지를 심기 위해 제품 광고에 바리스타 등을 모델로 기용하고 있다.


커피 볶는 집이 늘고 있다

현재 전국의 로스터리 숍은 300개 안팎으로 추정된다. 너무 많은 커피 가게가 생기고, 사라지기 때문에 정확한 통계를 낼 수는 없지만 그간 국내에 팔린 로스터기(생두를 볶는 기계)의 숫자를 감안할 때 그 정도가 될 것이라는 게 업계의 추산이다. 홍성대 대표는 “2년 전만 해도 커피 볶는 집은 불과 100곳 남짓이었다. 하지만 커피가 향기와 맛으로 마시는 음료라는 사실을 소비자들이 깨닫게 되면서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는 로스터리 숍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다”고 했다.

로스터리 숍들이 내세우는 가장 큰 강점은 신선함이다. 가게마다 중소형 규모의 로스터기를 구비하고, 직접 볶은 싱싱한 원두로 내린 커피를 판다는 점을 강조한다. 이는 스타벅스·커피빈 등 외국계 커피체인점들의 틈새를 파고든 측면이 있다. 스타벅스 등이 진하고 부드러운 맛의 에스프레소 등으로 인스턴트 커피 일색의 국내 커피시장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 시켰지만 외국에서 원두를 볶아오는 만큼 신선도가 아쉬웠던 게 사실이다. 체인점들이 커피 애호가들을 만들어내는 데 기여했지만, 역설적으로 높아질 대로 높아진 커피 애호가들 수준을 맞추기에는 2%가 부족했던 셈이다. ‘커피’의 저자인 바리스타 조윤정씨(커피스트 대표)는 “바로 볶고, 바로 갈아서, 바로 내린 신선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는 점에서 스타벅스나 커피빈과는 다르다”고 했다. 커피 볶는 가게들은 메뉴의 다양성으로도 체인점들과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케냐 AA’ ‘과테말라 안티구아’ ‘컬럼비아 수프리모’ ‘이디오피아 이가체프’ ‘브라질 산토스’ 등 과거엔 쉽게 접하기 어려웠던 유명 커피산지들의 단품 커피들을 맛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아예 외국에서 커피를 따다가, 직접 조달하는 가게도 생겼다. PPCOFFEE의 최병송 대표는 “필리핀 보홀의 밀림에서 야생커피를 채취해 들여오고 있다. 다른 커피에서 느낄 수 없는 독특한 향과 고소한 느낌이 상당히 강하고, 뒷여운이 아주 길다”고 말했다.

몇몇 로스터리 숍이나, 대학교 평생교육원 등에서 운영하는 커피교실도 ‘커피 볶는 집’의 증가에 기여하고 있다. 실제 커피교실에서 배운 사람들이 새로 창업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최병송 대표는 “내가 커피교실에서 가르쳐준 사람 중 세 명이 로스터리 숍을 직접 차렸다”고 했다.


인스턴트 커피, 캔 커피도 고급화 바람

싸구려 커피의 대명사였던 인스턴트 커피도 ‘프리미엄’이라는 명칭을 걸고, 고급화 바람에 뛰어들었다. 재료의 고급화가 포인트다. 대개 인스턴트 커피에 쓰였던 원두는 ‘로부스타종’인데, 향이 약하고 맛도 거칠다는 단점이 있었지만 값이 싸고 커피 추출률이 높다는 이유로 즐겨 사용됐다. 하지만 최근엔 고급 원두커피에 쓰이는 ‘아라비카종’을 채용한 인스턴트 커피가 출시되면서 ‘인스턴트 커피=로부스타 원두’라는 공식이 깨졌다.

동서식품은 최근 아라비카 원두를 100% 사용한 인스턴트 커피를 출시했는데, 신선한 원두의 깊고 진한 향과 맛을 즐길 수 있다는 점을 셀링포인트로 내세우고 있다. 이 회사 안경호 홍보실장은 “일반커피에 비해 가격이 18% 비싼데도, 판매량이 늘고 있다”고 말했다.

캔 커피도 ‘프리미엄’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고 있다. 업체들은 “고급 원두를 사용하고 단맛을 내는 인공첨가물을 줄인 프리미엄 제품이 원두 커피의 진한 맛과 향을 최대한 살려냈다”고 주장한다.

‘볶은 후 3일 이내, 분쇄 후 24시간 이내 추출한 원두를 드립방식으로 추출’ ‘코스타리카 SHB·에티오피아 모카·브라질 산토스 등 고품질 원두 사용’ 등 신선함과 고품격을 강조하는 수식어들이 프리미엄 캔 커피들을 선전하는데 사용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의 ‘칸타타’, 매일유업의 ‘콰트라 바이 카페라떼’, 동서식품의 ‘맥심 라떼디토’ 등이 프리미엄 캔 커피 시장을 둘러싸고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최근엔 남양유업이 ‘원두커피에 관한 4가지 진실’, 야쿠르트가 ‘산타페 겟츠 아메리카노’ 등의 제품을 출시하고, 프리미엄 커피시장 경쟁에 뛰어들었다.

업계에선 “기존 제품에 비해 커피의 질이나 케이스, 디자인 등이 업그레이드 된 프리미엄 제품들이 커피시장의 수준을 한 단계 끌어올릴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왜 고급 커피의 대중화인가

의식주 전반에 불고 있는 웰빙바람이 가장 큰 이유다. 실제 원두커피는 신선한 맛은 기본이고, 인스턴트 커피보다 건강에도 덜 유해하다는 점에서 사람들의 웰빙욕구를 충족시킨다. 불안·초조감·신경과민·불면증 등 커피의 부작용 논란을 부르는 카페인 함유량도 인스턴트 커피보다 원두커피가 적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기도 했다. 설탕이나 크림 등 인공 첨가물을 넣지 않은 원두커피가 인스턴트 커피보다 저칼로리라는 점도 이런 욕구에 부합한다.

홍성대 대표는 “식문화의 변화가 양에서 질로, 질에서 웰빙으로 변하고 있다”며 “사람들이 커피를 향기와 맛으로 마시는 음료라고 생각하면서 고급커피를 찾고 있다”고 했다. 조윤정씨는 “예전에는 뭔가 가미되고 첨가된 것에 사람들의 입맛이 길들여져 있었지만, 웰빙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이 기본적인 원료 자체에 대한 소중함을 깨닫기 시작했다”고 했고, 여의도 ‘캐슬힐’의 김민상 대표는 “좋은 걸 맛본 사람은 다시 맛없는 커피를 먹기 어렵다”고 했다. 커피애호가인 미술평론가 노성대씨는 “좋은 커피는 오감을 자극한다. 밤에 원고를 쓰면서 좋은 커피를 마시면 다음날까지 목젖이 (커피향을) 기억한다”고 했다.

같은 종류의 커피라도 누가 볶고, 내리느냐에 따라 맛과 향취가 달라진다는 점에선 다양성을 선호하는 요즘 사람들의 기호를 충족시킨다는 측면도 있다. 실제 커피 애호가들이 발품을 팔아가면서 외딴 곳에 있는 로스터리 숍을 찾는 것도 이런 욕구에 부합한다고 할 만하다. 김민상 대표는 “다양한 것, 신선한 것, 새로운 것을 준다는 인상을 준다. 바리스타들이 자기 자부심을 갖고, 자존심을 걸고 커피를 내놓기 때문에, 품질이 좋고 같은 커피라도 제각각의 특색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고급커피를 제공하는 로스터리 숍은 문화를 나누는 공간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로스터리 숍이 운영하는 커피교실에서 만난 사람들이 소모임을 결성, 각종 문화 정보를 공유하고 친목을 도모하는 경우도 많다. 방송작가 이인경씨는 “커피를 마시는 게 전부가 아니다. 사람을 만나서 세상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으면, 안락하고 그 공간에 있는 사람들과 같이 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고 했다.

지난해 커피 붐을 일으켰던 드라마 ‘커피프린스 1호점’에서 주인공 공유의 아버지로 출연했던 연극배우 남명렬씨는 “약속이나 일이 있을 때 일부러 한 시간이나 한 시간 반 일찍 약속장소인 커피숍으로 가서, 신선한 커피를 마시면서 쉬는 시간을 갖는다”면서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이 문화가 아니겠느냐. 커피는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매개체다”라고 했다.


커피 즐겨 마신 고종황제…커피숍은 1902년에 첫 선

1970년대 비싼 다방커피대신 노상에서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람. |경향신문 자료사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커피를 접한 사람은 고종황제로 알려져 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러시아 공사관에 머물면서 처음 커피를 접한 고종은 덕수궁으로 환궁한 이후에도 계속 즐기게 됐다고 한다. 당시 커피는 왕족들과 고위 관리들이 즐겨 마셨으며, ‘가배차’ ‘가비차’ ‘양탕(洋湯)국’ 등으로 불렸다. 하지만 고종은 커피로 인해 독살될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러시아 역관인 김홍륙이 러시아와의 통상에서 거액을 착복한 사실이 드러나 관직에서 쫓겨나고 흑산도로 유배를 떠나게 되자, 앙심을 품고 황제와 세자가 마시는 커피에 독을 넣었기 때문이다. 고종은 커피의 향이 평소와 다르다고 생각해 반모금 정도만 마신 뒤 내뱉었지만, 치아를 무려 18개나 잃었다고 한다.

한국 최초의 커피숍은 1902년 10월 정동의 이화여고 자리에 설립됐던 손탁호텔 1층의 정동구락부로 알려져 있다. 당시 이곳에서 파는 커피는 너무 비싸 부유한 사람만이 마실 수 있었다. 요절 시인 이상(1910~37)도 한국의 커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커피와 음악, 술친구를 좋아했다는 그는 ‘제비’ ‘쯔루’ ‘식스나인’ 등 세 개의 다방을 열고 닫았다. 당시 커피는 모두 원두커피였는데, 커피가 귀했던 시절이라 사골국물 끓이듯 검은 물을 우려낼 수 있을 때까지 우려냈다.

한국전쟁이 발발하고 미군이 진주하면서 1회용 인스턴트 커피가 등장했고, 이것이 유출되면서 커피는 일반화됐다. 당시 미군으로부터 유출된 인스턴트 커피는 카페인이 너무 많이 들어있어, 과음하면 불면증에 걸린다는 말이 있었다. 미군의 인스턴트 커피가 암시장을 통해 거래되자 정부는 외화유출 방지와 세원확보 차원에서 커피회사의 설립을 인가했고, 1968년 5월 인천 부평에 동서커피가 설립됐다.

전북대 강준만 교수는 제자인 오두진씨와 함께 쓴 ‘고종 스타벅스에 가다’라는 책에서 “한국이 커피의 주요 소비국이 된 것은 커피가 서구화의 상징이었으며, 한국인의 사교행위의 주요 매개 수단이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 글 이용욱·사진 우철훈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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