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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과의 만남]영화 ‘화려한 휴가’ 김지훈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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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은 영화보다 더 눈물없이 볼수없는 사건”-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 20일 만인 13일 500만 관객을 돌파했다. 논술학원에선 학생들에게 단체 관람을 권유하고 있으며, 대선을 앞둔 정치인들도 앞다퉈 영화를 관람하고 있다. 사실 ‘80년 광주’를 다룬 영화가 100억원대의 많은 예산을 들여 제작된다는 소문에 고개를 갸웃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질문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상처가 채 아물지 않은 역사적 사건을 대중영화로 만드는 게 적합한가’였다. 또 하나는 ‘이 무거운 소재로 돈을 벌 수 있나’였다. 후자는 영화 흥행을 통해 어느 정도 증명됐지만 전자는 여전히 논쟁중이다. 지난 8일 경향신문사에서 ‘화려한 휴가’의 김지훈 감독(36)을 만났다. 알려진 대로 대구 출신인 그는 강한 경상도 억양으로 말을 이어갔다.

-관객 반응이 좋습니다.

“입소문을 통해 흥행 여부가 결정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초반에 이렇게 잘될지는 몰랐어요. 27년 전 얘기지만,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그 속에 있는 듯한 느낌을 갖는 것 같아요. 영화를 본 10대, 20대가 ‘실제 있었던 일이냐’고 물어본다고 해요. 관람 후 인터넷에서 관련 자료를 찾아보거나 책도 사본다고 하더군요. 이 영화를 싫어하는 사람들은 ‘왜곡이다’ ‘대선용이다’라고 평가한다고도 하지만, 저는 정치적 이슈보다는 당시 살았던 사람들, 우리가 잊고 지낸 사람들을 얘기하고 싶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가 자연스럽게 이뤄진 건 아니잖습니까.”

-왜 ‘80년 광주’를 다루겠다고 생각하셨나요.

“대구에서 자란 뒤 서울에 와서 처음으로 5·18을 알았어요(그는 한양대 연극영화과 93학번이다). 10살 때 광주항쟁이 일어났는데 당시엔 ‘폭동’으로 알았어요. 어린 마음에 ‘나라 망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도 꽤 했죠. 훗날 비디오, 책, 자료 등을 통해 진상을 알고는 굉장히 부끄러웠어요. 몰랐다는 것뿐 아니라 아예 진실을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 것 자체도 부끄러웠지요. 훗날 내공이 쌓이면 영화를 만들고 싶다고 생각했죠. 2004년 무렵 나현 작가와 함께 시나리오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자료 조사는 어떻게 했나요.

“2만장 정도 되는 증언록이 있어요. 자료집, 책, 다큐 등도 봤고요. 당시 생존자들의 인터뷰가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그분들은 이구동성으로 ‘많은 사람이 보게 해달라’고 말했지요. 광주항쟁은 지금까지도 광주만의 역사처럼 평가받고 있는 게 사실입니다. 그래서 ‘5·18의 전국화’를 모토로 삼았죠. 대중영화 감독은 역시 많은 사람이 보게 하는 게 우선 순위입니다. 곰발바닥, 제비집, 상어지느러미 같은 특별한 요리가 아니라 ‘맛있는 자장면’을 만들겠다고 생각했죠.”

‘화려한 휴가’ 이전에도 광주민주항쟁을 다룬 영화는 있었다. 독립영화 ‘오 꿈의 나라’에서부터 ‘부활의 노래’ ‘꽃잎’ ‘박하사탕’ 등이었다. 그러나 ‘화려한 휴가’에는 다른 영화에 나왔던 ‘지식인’의 존재가 보이지 않는다. 택시기사, 간호사, 제비족 등 가족의 안위가 걱정되거나 친구의 죽음 때문에 ‘열 받아서’, 혹은 괜한 흥에 겨워 금남로에 나왔던 이들이 영화의 시종(始終)을 이끌고 간다. 영화가 역사의 거시적 조건을 보지 못했다거나, 감독의 독특한 미학적 시선이 부재하다는 비판도 나온다.

-영화에 대한 아쉬움의 목소리도 없지 않습니다.

“왜 감독의 생각이나 정치적 색깔이 없냐, 당시 상황의 재구성에만 멈췄냐 하는 비판도 많이 들었습니다. 일견 동의하지만 역사적 특수성이 보편화되는 과정에는 여러 가지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쪽에서 심오한 토론이 이뤄지면, 다른 한쪽에선 관객과 만나서 이야기해야 합니다. 지난 27년간 5·18에 대해 고민했던 분들이 그렇게 많았다면, 역으로 지금까지 그분들은 뭘 하셨는지 묻고 싶습니다. 5·18은 지식인이 소유한 역사가 아닙니다. 이건 존재의 역사입니다. 혹자는 감동을 주기 위해 눈물을 넣은 ‘신파’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5·18은 정말 눈물 없인 볼 수 없는 사건입니다. 대중영화는 대중과의 접점을 찾아야 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참여의 역사’가 이뤄지는 방법입니다.”

-애초엔 윤상원 열사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했다고 들었는데요.

“윤상원 열사는 민주항쟁의 대표성을 띤 인물입니다. 그런데 작품을 다듬다 보니 사람 냄새가 안나요. 받아들이는 측면에서 너무 어려운 얘기가 된 것 같더라고요. 지식인이 주인공이라서 그렇다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5·18은 소시민이 중심이 된 항쟁입니다. 제 영화에 ‘지식인’이 없다고 하지만, ‘지성인’은 있습니다. 아무리 못배운 사람이라 해도 진실을 실천하면 지성인입니다. 지금은 지식인보다 지성인이 중요한 사회입니다.”

-아무리 그래도 영화가 너무 감상적인 것 아닌가 싶기도 한데요. 멜로, 코믹 코드가 과하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영화를 준비하면서 느낀 건데, 당시 금남로에 있었던 사람들이 전부 정치 이데올로기 때문에 나온 건 아니에요. 내 이웃, 가족이 희생돼 나섰어요.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았던 분들도 지식인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이 많아요. ‘해방 광주’ 기간 동안 강도 한 건이 없었다고 해요. 세계적 유례가 없는 일이라더군요. 광주민주항쟁에는 흥, 가락, 농이 있었어요. 나의 슬픔을 타인에게 전이시키지 않겠다는 의지라고 할까요. 공포가 엄습했을 때 농담하는 사람들 있잖아요. 5·18이 신파로 만들어졌다고 해서 그 의의가 훼손되는 건 아닙니다. 역사성은 우리 손에 있어요.”

-극의 전개가 지나치게 기계적이라는 비판도 있습니다.

“영화를 관객에게 쉽게 다가가게 하는 것이 중요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에서 셰익스피어까지, 발단 전개 위기 절정 결말은 정해진 구조 아닙니까. 여기에 충실히 못했다고 비판받을 수는 있지만, ‘화려한 휴가’가 내러티브 구조를 정형화했다고 비판하는 건 이해 못하겠어요.”

-광주항쟁을 대중영화로 풀어내기에는 조금 시기가 이른 게 아닐까요.

“왜 ‘역사적 사건’을 대중적 형식으로 풀어냈느냐는 문제로 돌아가네요. 5·18의 아픔은 다름 아니라 망각, 왜곡입니다. 그래서 치유가 안됩니다. 5·18은 공식적으로 민주항쟁이라고 평가받았지만, 사람들은 여전히 관심이 없습니다. 행사 하는 날만 잠깐 관심을 갖습니다. 일부에선 여전히 폭동이라고 믿는 사람들도 있어요. ‘화려한 휴가’에 부정적인 측면도 있겠지만 더 큰 대의와 미덕을 생각해주셨으면 합니다. 잘못 인식하거나 모르는 분들에게 올바른 관점을 제공했다는 거죠. 전 광주를 영화로 풀어내는 시기가 오히려 너무 늦었다고 생각합니다. ‘몰랐던 역사를 알아서 행복하다’는 젊은 관객의 편지를 받고 너무나 기뻤습니다.”

-안성기, 나문희씨 등의 연기는 기존 대중에게 익숙한 이미지를 단물 빼듯 뽑아낸 혐의가 있습니다.

“알 파치노, 로버트 데 니로도 강력한 이미지를 갖고 있지 않나요. 그건 배우의 고전적 아우라입니다. 전 이 영화에서 한 배우의 대표적인 캐릭터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정형화가 아니라 대표성을 띤다고 말하고 싶네요.”

-현재 영화의 주된 관객층은 10대 후반~20대입니다. 이들에게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를 보여준다는 건 상업적 측면에서 모험이지 않았나요.

“상영관을 다니면 3대가 손을 잡고 오는 모습을 봅니다. 무대 인사만 40~50군데를 돌았는데, 연령층이 정말 다양해요. 80대 이상 되는 분도 오세요. 이미 ‘화려한 휴가’는 보편성을 찾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영화를 통해서 가족회의가 이뤄진다는 얘기도 들었습니다. 제 의도를 넘어서서 관객이 반응하고 있어요.”

-금남로에서 첫 발포가 이뤄진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100번 이상 편집했다고 들었는데요.

“발포 전후 시간대에 대해선 사진 등 자료가 다 있는데, 발포 순간에 대해선 없어요. 증언은 있지만, 기억이 사람마다 다를 수 있으니까요. 오히려 감독으로선 영화적으로 재해석할 수 있어서 좋은 기회였습니다. 당시의 아픔, 슬픔, 분노를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만들었습니다. 다큐멘터리와 픽션의 느낌을 합쳐서 영화적 긴장감을 부여했지요.”

-마지막 ‘상상의 사진’ 장면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신애(이요원 분)는 침울한 표정으로 관객을 응시합니다. 원래 배우가 카메라를 쳐다보면 ‘9시 뉴스’가 되지만, 이 장면에서만은 주관적으로 응시합니다. 전 여기서 관객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한때 나침반이 고장나서 힘들었지만, 지금은 나침반이 작동하는 데도 방향성을 잃었습니다. 신애가 방향성을 잃은 우리에게 간곡한 울림을 전하도록 하고 싶었습니다. 마지막 장면에서 흘렀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 너무 상투적이라는 분도 계시지만, 10대, 20대의 60~70%가 이 노래를 모릅니다. 어떤 분은 새로 작곡된 영화 음악인 줄 알더군요. 노래의 의미를 알고 있는 사람에겐 더 큰 감상을, 모르는 사람에겐 당시의 정서를 전해주고 싶었습니다.”

-대중영화 감독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감독은 ‘아름다운 거짓말’을 잘하는 사람입니다.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를 보면 죽어가는 소녀를 위해 화가가 벽에 가짜 잎을 그리잖아요. 그건 거짓말이지만 결국 죽어가는 소녀에게 삶의 의지를 줬습니다. 또 감독은 ‘배관공’이라고 생각합니다. 감성의 입구가 있으면 출구가 있어야 하잖아요? 대중이 원하는 이야기를 통해 소통없는 사회의 감성을 뚫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김지훈 감독은

1971년 대구 출생. 한양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으며 단편영화 ‘온실’ 연출, 장편영화 ‘질주’ ‘비밀’ 등의 조연출로 영화 경력을 쌓았다. 2004년 차인표, 조재현 주연의 코미디 ‘목포는 항구다’로 장편 데뷔했다. 직접 아이디어를 내고 시나리오에 참여한 ‘화려한 휴가’는 그의 두번째 장편 연출작이다.

〈글 백승찬·사진 박재찬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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