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北조명록은 누구?‥‘김정일체제’ 군부 1인자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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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사망한 조명록 북한 인민군 총정치국 국장(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방위 제1부위원장 겸직)은 한 마디로 `김정일 체제'의 군부를 대표하는 인물이다.

인민군 총사령관을 겸직하는 김 위원장이 군 통수권을 쥐고 있기는 하지만 순수한 군인 출신 중에는 조명록이 부동의 `서열 1위'였다.

1928년 함경북도 연사군 출생으로 `혁명2세대'로 분류되는 조명록은 러시아 공군대학 유학 후 1952년 공군비행사로 6.25전쟁에 참전했고 결국 1977년에 공군사령관까지 올랐다.

김정일 후계가 공식화된 1980년 10월 6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군사위 위원에 선출된 조명록은 1992년 김정일 위원장이 원수가 될 때 대장으로 승진했고, 1995년 10월 차수(원수와 대장 사이) 승진과 함께 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된 다음 `김정일 체제'가 공식 출범한 1998년 9월 최고 권력기구인 국방위의 제1부위원장에 기용됐다.

김정일 위원장이 후계자 지위를 대내외에 공표한 이후 자신의 통치체제를 출범시킬 때까지 군부 내 조명록의 위상도 비슷한 단계를 밟아 정점까지 상승한 셈이다.

이처럼 김 위원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은 조명록은 2000년 10월 김 위원장 특사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 빌 클린턴 당시 대통령을 만나 김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또 매들린 올브라이트 국무장관과 월리엄 코언 국방장관을 비롯한 미 행정부의 고위관리들과 회담을 갖고, 정전협정을 평화보장 체제로 바꿔 공식적으로 6.25전쟁을 종식시키는 데 노력한다는 내용의 '북미 공동코뮈니케'를 발표했다.

당시 조명록은 6.25전쟁 이후 미국을 방문한 북한의 최고위급 인사로서 군복 차림으로 백악관을 방문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이렇게 잘 나가던 조명록의 발목을 잡은 것은 병마였다. 2006년 이후 만성 신부전증이 급속히 악화돼 공개활동을 거의 접어야 했고 군 총정치국장직도 김정각 제1부국장이 사실상 대행해온 것으로 전해졌다.

'9.28당대표자회'에서 김 위원장 등 최고위급 인사 5명으로 구성된 정치국 상무위원회의 일원으로 조명록이 중용된 것도 일종의 `군 원로 예우' 차원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김 위원장을 제외한 나머지 4명의 상무위원 자리가 군부와 비군부 출신 각 2명에게 똑같이 배분됐는데, 군부에서는 김정은 후계체제의 핵심으로 급부상한 리영호 총참모장이 조명록과 함께 발탁됐기 때문이다.

이런 흐름에서 볼 때 조명록이 사망했어도 북한 군부의 권력지형에는 큰 변화가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다만 당 정치국 상무위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 조명록의 자리에 누군가 군부 인물이 채워질 것이라는 전망은 일각에서 제기된다.

한편 북한의 후계자 김정은(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은 7일 발표된 조명록 장의위원회 명단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인 김영남(최고인민회의 상임위 위원장).최영림(내각 총리).리영호를 제치고 맨 앞자리에 올라 눈길을 끌었다.

김정은은 9.28당대표자회 직후 북한 매체 보도에서 4명의 당 정치국 상무위원에 이어 5번째로 호명됐는데, 이번 조명록 사망을 계기로 명실상부한 북한의 `2인자' 자리를 굳혔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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