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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령 20000호 특집]압축성장 ‘다면체의 삶’

ㆍ책으로 본 한국인의 자화상

한국인은 과연 누구인가? 휴대전화, 자동차, 조선업계가 세계시장에서 경쟁력을 갖추고, 영화와 드라마로 인한 한류붐으로 한국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2000년 이후 한국인에 관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우리 안에는 전근대적인 민족주의도 있고, 탈근대적인 젊은이들의 모습도 보인다. 압축성장으로 인해서 우리 안에 여러 모습이 존재하는 것이다. 책을 통해 돋보기를 들이대고 본 한국인을 살펴봤다. 한국인은 다면체다.

# 영어에 올인 사교육비 ‘눈덩이’

요즘 교육은 아이의 학습능력이 아니라 부모의 능력이라고 한다.

아이의 성적은 엄마의 정보력과 할아버지의 경제력에 달렸다는 농담 아닌 농담과 아빠의 종류에 펭귄아빠, 기러기아빠, 독수리아빠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펭귄아빠는 유학간 자녀에게 찾아갈 돈이 없어 생활비만 부치는 아버지고, 기러기아빠는 1년에 한두 번 오가는 아버지며, 독수리아빠는 수시로 오가는 아버지를 의미한다.

교육과학기술부의 2008 사교육비 조사에 따르면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23만3000원으로, 전년보다 5% 늘었다. 정부는 영어 사교육비를 줄이겠다고 했지만 영어의 경우 7만6000원으로 전년보다 11.8% 늘어 가장 큰 폭의 증가세를 보였다. 이명박 정부 초기엔 영어상용화도 논란거리였다.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2>에서 대학으로 옮아붙은 영어강의와 영어공용화에 대해 유럽국가들은 영어를 상용화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다고 했다. ‘(영어상용화)는 결코 선진화가 아니며, 사회 양극화의 언어적 표현이자 대미 예속의 강화일 뿐’이란 것이다. 구정화는 <퍼센트 경제학>에서 ‘교육은 단순히 언어를 익히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신도 모르게 그 나라의 사회와 문화를 배우면서 정체성도 변화시킨다. 유학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한국인의 정체성을 유지하는 것보다 미국인으로 변할 필요가 있다. 그러니까 유학이 성공하면 아이는 한국인이 아닌 미국인이 되는 것’이라고 했다.

# ‘우리가 남이가’ 끈끈한 관계 중시

얼마 전 방송된 드라마 <보석비빔밥>엔 이런 장면이 나왔다. 미국에서 온 어머니가 승려가 되겠다는 아들에게 미국으로 돌아가자고 하는 모습이다. 아들의 반대에도 아랑곳없이 아들의 옷을 주섬주섬 가방에 넣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 외국인은 어떻게 생각할까. 어이없어 할 게 분명하다. 미국 드라마를 보면 아버지가 다섯살짜리 딸의 방도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만약 딸이 싫다고 하면? 돌아선다. 영화 속에서 부모에게 ‘나 약혼했다’고 하면 남편감이나 신붓감이 누구인지 캐묻지 않고 축하한다는 말부터 건넨다.

권수영은 <한국인의 관계심리학>에서 관계와 경계의 논리로 한국인과 미국인을 분석했다. 권수영은 ‘개인은 늘 가족 안에서 의미가 있다. 개인은 맏아들이거나 맏딸이요, 어머니이거나 며느리’라고 했다. ‘나’ 속에는 가족, 친구, 사회가 있다. 그럼 서양인의 ‘경계’는? ‘미국인은 자기의 경계에 다른 사람이 접근하는 것을 아주 꺼려 한다. 자기가 설정해 놓은 경계는 남과 공유하는 공간이 아니라 나의 성곽인 동시에 사실 나이다.’ 관계가 중요한 사회에서는 ‘우리가 남이가’ 식의 집단주의가 생기고, 경계가 확실한 사회에서는 개인주의가 나타난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것이 관계를 중시하는 사회의 특성이다. 이런 끈끈함이 정인 것이다.

# 차별의식 강해 다인종 포용 인색

한민족이나 대한민국이란 말을 내세우면 우리 사회에선 대놓고 비판하기 힘들다. 민족과 국가는 성역으로 간주되기 때문이다. 게다가 단일민족이란 믿음은 우리 민족이 우수하다는 인종주의적인 성격을 짙게 띤다. 박노자는 <당신들의 대한민국>에서 ‘한 종족의 형성은 수천년에 걸쳐 수많은 이질적 요소가 첨가·융합되는 복합적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 까닭에 민족에게 뚜렷한 기원이란 있을 수 없다’고 했다.

사실 한국은 다문화, 다인종 사회로 급속하게 변하고 있다. 한국에 체재하는 외국인만 100만명이 넘는다. 2007년 기준 9쌍 중 한 쌍이 외국인과 결혼한다. 2020년이면 초등학생 4명 중 한 명은 다문화가정의 자녀다. 구정화는 <퍼센트 경제학>에서 ‘이제 대한민국은 단일민족이라는 신화를 버려야 한다’고 했다.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의 보고서는 ‘한국에서 단일민족을 강조하는 것은 한국 땅에 사는 다양한 인종을 이해하고 포용하며, 또 우호를 증진하는 데 장애가 될 수 있다. 그러므로 한국 현대사회의 다인종적 성격을 인정하고 적절한 조치를 하라’고 했다. 하지만 아직도 한국인들은 차별의식이 강하다. 한국에서 18년이나 살았고, 한국말을 자유자재로 하는 미누를 네팔로 추방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산업연수생이 없으면 중소기업은 돌아갈 수 없는 현실인데도 한국은 ‘법’이라는 엄격한 테두리를 만들어 놓고 외국인노동자를 통제한다.

# ‘남보다 한발 더’ 생존위해 속도경쟁

흔히 우리는 빨리빨리 문화가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됐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구한말 한국을 여행한 외국인들의 여행기는 조선인을 게으르고 느린 사람들로 묘사하고 있다.

그럼 어떻게 빨리빨리가 됐을까. 진중권은 <호모 코레아니쿠스>에서 ‘농경사회에서 조선인은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 관리하는 것이 낯선 것’이었는데 일제강점기 때 ‘자연의 시간에 익숙한 몸을 공장기계와 함께 돌아가는 산업사회의 몸으로 강제로 뜯어고치려 했다’고 썼다. 찰리 채플린이 나온 영화 <모던타임스>를 떠올리면 쉽다. 컨베이어 벨트가 돌아가는 기계 앞에서 빨리빨리 하지 않으면 쫓겨나기 일쑤다. 진중권은 ‘생산을 위해 속도감이 기입된 몸은 느린 속도에 불쾌감을 느낀다’고 했다.

탁석산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현세를 중요시하는 한국인의 특징이 고도성장을 가능케 했다고 한다. 이슬람교도 같이 내세에 집착하면 현재의 발전에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생존이 문제가 되었던 시대에는 남보다 한 발이라도 빨리 움직여야 먹고 살 수 있었기 때문에 빨리빨리 하는 것은 합리적인 대응이었다’고 했다.

# ‘성공의 척도’ 인식 평수 늘리기 앞다퉈

한국에 온 외국인들은 도시를 뒤덮은 아파트에 깜짝 놀란다. 땅이 비좁고 인구가 많아서일까.

한국의 아파트 연구로 소르본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발레리 줄레조는 <아파트 공화국>에서 ‘영토가 협소하고 인구밀도가 높아도 도시집중화 현상을 보이지만, 대규모 주택단지 건설은 없었다’고 했다. 아파트 문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한국적인 현상이다. 게다가 아파트는 재산증식 수단이다. 부동산 불패란 말은 빌라형 주택에는 통하지 않지만 아파트엔 통한다. 줄레조는 ‘권위주의 국가는 가격이 통제된 아파트를 대량 공급하려 했다. 중간계급을 아파트 단지에 결집시키고, 이들에게 주택 소유와 자산소득 증가라는 혜택을 주었으며 그들로부터 정치적 지지를 획득할 수 있었다’고 썼다.

탁석산은 <한국인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아파트는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현세주의의 특징을 보여주는 한 사례’라고 썼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가치를 두는 특성상 아파트 평수만큼 계층을 쉽게 구분해주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해서 ‘아파트 평수는 한국사람들의 성공의 척도’라고 했다.

<최병준기자 bj@kyunghyang.com>

입력 : 2009-10-29 17:57:16수정 : 2009-10-29 18:5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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