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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번 매코맥 칼럼](22) 대전환 필요한 코펜하겐 회의

관측이 시작된 이래 가장 더웠던 8월을 보내고 맞이한 9월, 호주의 동안(東岸)은 붉은 먼지로 뒤덮였다. 9년째 가뭄이 계속되고 있는 내륙에서 불어온 500만t가량의 흙먼지 탓이다. 항공편이 잇달아 취소됐고 사람들은 실내로 대피했다. 가시 거리는 수미터에 불과했다.

9월 초 한국인들은 미래에 한반도 기후가 아열대로 변하고 몇몇 산의 정상 부근을 제외하고는 눈 구경을 할 수 없을 것이라는 뉴스를 들었다. 다른 지역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북극 얼음이 녹아 극 지방으로 향하는 항로가 열리고 산호초가 사라지며 폭풍·홍수 등 자연 재해가 세계로 퍼져나갈 것이다. 과학자들은 지구적 재앙의 도래를 경고하고 있다.

유엔환경계획은 최근 연구 보고서에서 만약 국제사회가 지금까지 제안된 모든 기후 정책을 법제화한다 하더라도 지구의 기온은 금세기 동안 계속 상승할 것이라고 밝혔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한다해도 이미 배출된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온실가스는 지구 기온을 2.4도 상승시킨다.

12월 덴마크 코펜하겐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 우리는 세계의 퇴보를 저지하거나 적어도 그 속도를 늦추기 위해 전시 동원과 다름없는 강도의 운동을 시작한다는 합의에 도달해야 한다. 코펜하겐 회의는 인류 역사상 가장 중요한 행사이자 우리의 마지막 기회가 되고 있다.

온실가스 다룰 기후변화 총회

그린피스·세계야생동물기금 등 비영리기구들은 코펜하겐 회의에서 2020년까지 전 세계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40% 감축하고 2050년까지 80%를 감축한다는 합의가 나와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 목표치를 강제하는 다른 방법은 교토의정서의 감축량을 단기적으로 2~3배, 장기적으로 10배까지 늘리는 것이다.

1997년 교토의정서 이후 많은 나라들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겠다고 했지만 배출량은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92년부터 2007년까지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은 38% 늘었다. 90년대 매년 1.1%의 비율로 증가하다 2000년대 들어서는 3.5%씩 늘었다. 전문가 보고서는 점차 어두운 전망을 내놓고 있다.

지난 수천년 동안 인류는 농경과 마을·도시·문명을 발달시키는 과정에서 기후 조건을 불안정하게 만들어왔다. 산업혁명은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산업화 이전 280PPM에서 387PPM으로 증가시켰다. 산업혁명 이후 인간은 매년 3.1PPM의 비율로 이산화탄소를 공기 중으로 뿜어내고 있다. 현재 추세를 토대로 예측해 보건대 금세기 말 이산화탄소 농도는 950PPM에 이르고 기온은 4.6도 상승할 것이다.

2007년 인도네시아 발리에 모인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폭을 2도 정도로 유지하려면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를 반드시 450PPM 이하로 묶어놓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럽연합과 호주가 이 목표를 채택했다.

그러나 많은 과학자들은 400PPM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날 수 있는 ‘티핑 포인트’라고 생각한다.

유엔 정부 간 기후변화위원회(IPCC)의 라젠드라 파차우리 의장은 사안의 긴급성을 고려해 350PPM까지 낮춰야 한다는 입장이다. 만약 모든 국가들이 약속한 감축량을 지킨다해도 기온 상승폭은 여전히 약 3.5도다. 다시 말해 이전에 발표된 ‘최악의 시나리오’보다 2배 높은 것이다.

호주에서 2008년 개혁적인 정부가 출범했지만 이산화탄소 농도를 450PPM으로 유지하겠다는 공약은 심각한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호주 정부는 가뭄과 화재·홍수·여름의 이상 고온(2008년 호주 남부 기온은 45도까지 치솟았다)이 계속되거나 악화되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고 있다.

곡창지대인 머레이·달링강 분지의 가뭄은 관개 작물의 생산량을 감축시켰고, 지난 2년간 벼농사를 지을 수 없게 만들었다. 가장 충격적인 일은 세계자연유산 중 하나인 그레이트배리어리프(산호초 군락)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에서도 지난 9월 개혁적인 정부가 정권을 잡고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020년까지 90년 대비 25% 감축하겠다고 발표했다. 지난 자민당 정권 때도 일본은 청정하고 효율적인 에너지 국가의 본보기로 비쳐졌다.

그러나 실상은 다르다. 일본은 교토의정서 목표치인 6% 감축을 달성하는 데 실패했을 뿐 아니라 2007년에는 배출량이 90년 대비 11% 증가했다. 90년 대비 20% 증가한 미국에 비하면 양호하지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21% 줄인 독일 같은 국가에 비하면 초라한 성적이다. 90년 대비 25%를 감축하겠다는 하토야마의 약속은 대담했고 미국의 시늉에 비하면 안도할 만한 것이다. 그러나 그는 아직 산업계를 설득하지 못했고 목표를 어떻게 달성할 것인지 청사진을 제시하지 못했다. 그의 공약은 코펜하겐 회의 결과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교토의정서를 이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배출량을 90년 대비 25% 줄이겠다는 계획은 하토야마가 현재 수준의 36%를 감축해야 한다는 뜻이다. 또 그가 만약 목표를 달성한다 해도 그것은 그저 첫걸음을 내디딘 것일 뿐이다.


탄소의존 산업구조 재고할때

한국의 경우 온실가스 배출량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빠른 속도로 증가해왔다. 90년부터 2005년 사이 90% 늘어난 것이다. 그러나 한국 정부가 발표한 온실가스 감축 시나리오 중 한가지는 202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량을 2005년 대비 8%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만약 한국이 코펜하겐에서도 이런 입장을 견지한다면 제대로 대접받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 지구적 재앙을 마주한 상황에서 이산화탄소 배출량의 증가를 말하는 산업국가는 ‘돌아가서 자신의 지구적 책임을 다시 생각해보라’는 권고를 듣게 될 것이다.

몇몇 기술적 발전은 별문제로 하고 우리의 정치적·도덕적 책무는 재생불가능하고 탄소집약적인 사회를 재생가능하고 탄소중립적인 사회로 바꿔야 한다는 것이다. ‘전통적인’ 탄소 분야에서 생산·소비·낭비를 줄이고 현존하는 자원을 아껴쓰며 자원을 공정하게 배분하는 방법을 찾아내고 비효율을 제거해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불교인·무슬림·무신론자를 막론하고 인류는 인간 사회가 생산·소비·낭비를 극대화하도록 조직돼야 한다는 유사 종교적 신념을 공유하고 있다. 국내총생산(GDP)의 규모와 성장률이 오늘날 국가 ‘성공’의 주요 지표다.

따라서 12월의 코펜하겐 회의는 우리에게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이제부터 국가들은 그들의 GDP가 아니라 그들이 세계시민으로서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데 성공했는지 여부에 따라 평가 받게 될 것이다.

물전쟁·석유전쟁·식량전쟁·전염병으로 얼룩진 기후 혼돈 속으로 빠져들지 않으려면 성장주의는 잠시 제쳐두어야 한다. 교토·발리 등 기후변화에 관한 주요 회의들은 인류가 가야 할 방향에 있어서 무기력한 불평·불만에 지나지 않았다. 코펜하겐 회의는 이보다 더 멀리 나아가야 한다.

“The Road to Copenhagen”
 
In September, after its warmest August on record, Australia‘s East coast was shrouded in thick red dust. Visibility was reduced to metres, forcing cancelation of flights and driving people indoors as some five million tonnes of soil blew in from the country’s vast interior where the drought is in its ninth year. Early in the same month, Koreans were told that in future snow was likely to disappear in their country save for a few mountain peaks, and that their climate would become sub-tropical. Elsewhere, the Arctic sea-ice crumbles, opening navigation and exploration routes into the polar regions, glaciers retreat, half the world‘s tropical and temperate forests, wetlands, and coral have gone or are threatened; storms, floods, and other natural disasters ripple around the world. Scientists warn of approaching global catastrophe.

The UN Environment Program’s latest study tells us that, even if the international community enacts every climate policy so far proposed global temperatures will still rise significantly through this century. Whatever we do now we “cannot reduce the already committed GHGs [global greenhouse gases] warming of 2.4 degrees Celsius.” The world‘s preeminent climatologists, according to the report in the April issue of the scientific journal, Nature, estimate that even with a moderate warming (20C) we stand “a strong chance of provoking drought and storm responses that could challenge civilized society, leading potentially to the conflict and suffering that go with failed states and mass migrations.” That is our future, and the outlook is steadily worsening.

At Copenhagen we have to reach global consensus to launch a campaign - amounting in intensity to wartime mobilization - to try to arrest, or at least slow, the degeneration of the world as we know it into the catastrophe of climate chaos. The December conference becomes the most important event in the history of humanity, our last chance.

Global NGOs, including Greenpeace and WWF, estimate that we need at Copenhagen a commitment to a global carbon cut of 40 per cent cut by 2020 and 80 per cent (95 per cent for the industrial countries) by mid-century. Another way of putting it is to say that the Kyoto targets - only reached in a few places - now have to be multiplied by two to three times in the short term and up to ten times in the medium term.

At present, despite the commitments many countries have made since Kyoto in 1997, they are rising steadily. Globally, greenhouse emissions rose by 38 per cent between 1992 and 2007, increasing from a rate of 1.1 per cent annually in the 1990s to 3.5 per cent in 2000-2007. The specialist literature is punctuated increasingly by bleak words: threshold, tipping-point, irreversibility. We are destabilizing the climatic conditions under which over the last several millennia humanity developed agriculture, villages, cities, civilizations.

Human activity, pumping carbon into the atmosphere at steadily increasing rates ever since the industrial revolution has raised the pre-industrial concentration of carbon in the atmosphere (280 ppm) to 387 ppm, and that level continues to rise by around 3.1 ppm per year. On a “business as usual” projection of our current trajectory, we are headed towards an end of century carbon concentration figure of around 950 ppm and a temperature rise of 4.60C.

To hold temperature increase to around 2 degrees, the world’s scientists meeting in Bali in 2007 insisted that we must at all costs keep levels of atmospheric carbon concentration below 450 ppm. The EU and Australia have now adopted that goal. However, many scientists think that the real tipping point is more likely to be 400 ppm - in any case now unavoidable and imminent - and highly influential ones, including Rajendra Pachauri, the head of the IPCC, think that, as a matter of urgency, we should reduce it to 350. Even if all cuts pledged by countries around the world as of this moment were realized, the temperature rise will still be in the order of 3.5 degrees, ie. almost twice the previous “worst case” scenarios.

For Australia, where a reformist and climate-conscious government took office in 2008, the subsequent commitment to 450 ppm has grim implications. It takes for granted continuing and worsening ravages of drought, fire, extreme summer heat (up to 45 degrees in Southern Australia in 2008), and - since it is a big country - floods. Already drought in the country‘s grain basket, the Murray-Darling River basin, has drastically reduced the output of irrigated crops and forced complete suspension of rice agriculture in the past two seasons. Most shocking of all, with a 450 ppm carbon concentration in the atmosphere, the Great Barrier Reef - one of the wonders of the world - is doomed.

In Japan too, a reforming, climate conscious government took office in September 2009 and immediately announced a commitment to a 25 per cent reduction on its 1990 emissions by 2020. Even under the previous LDP governments, Japan has sometimes been seen as a model of clean and efficient energy, but the fact is that it not only failed to meet its 6 per cent Kyoto reduction target but its emissions grew by 11 per cent to 2007. That was better, to be sure, than the US (+20 per cent), but it pales before the accomplishment of countries such as Germany which cut its emissions by 21 per cent.

Hatoyama’s 25 per cent “reduction on 1990 levels” is a bold promise, and it stands in relief compared to the paltry US gestures thus far. However, Hatoyama has yet to persuade industry or to develop a blueprint of how to accomplish it, his pledge is conditional on a Copenhagen agreement in which “all major economies participate,” and because of the failure of the post-Kyoto decade his 25 per cent of 1990 levels actually means he has to cut current levels by 36 per cent. And, if he accomplishes all that, in terms of what is needed it represents no more than a first step.

As for South Korea, its greenhouse gas emissions have been growing at the highest rate among OECD counties (increasing by 90 per cent between 1990 and 2005), and its thus far announced short-term (to 2020) goal is to hold them to an increase of not more than 8 per cent above its 2005 levels. Should it take that stance to Copenhagen, Korea is unlikely to fare well. Facing global catastrophe, any industrial country that talks of increasing its carbon emissions can expect to be told to go back and re-consider its global responsibilities.

Short of some technological breakthrough (of which at present there is no sign), the political and moral imperative is that we shift from non-renewable, carbon-intensive to renewable, carbon-neutral economic activity, cut back on production, consumption, and waste in the “conventional” carbon sector, husband existing resources and find more equitable and less wasteful ways of distributing them, eliminating the unnecessary and inefficient. Yet, as I wrote in this column in 2008 (“The Chimera of Growth,” March 2008), humanity‘s shared, quasi-religious faith, shared by Christians, Buddhists, Muslims and atheists alike, is that human society must be organized so as to maximize production, consumption, and waste. GDP scale and growth is currently the major indicator of the “success” of countries.

December’s Copenhagen meeting calls therefore for a Copernican shift so that henceforth countries will be evaluated not for their GDP but for their success as global citizens in cutting back greenhouse gas emissions. The growth fetish has to be set aside lest our decline into climate chaos, punctuated by water wars, oil wars, food wars, and epidemics, becomes irreversible. The Kyoto, Bali, and other major conferences on climate change were no more than feeble nudges in the direction humanity has to go. Copenhagen must go much further.




<정리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입력 : 2009-10-12 18:26:05수정 : 2009-10-13 00:4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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