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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번 매코맥 칼럼](16)4월 하늘의 ‘미스터리 물체’

지난 5일 북한이 발사한 것은 무엇이었나. 일본과 미국을 위협하려고 만든 대륙간 탄도 미사일 대포동 2호였나, 아니면 혁명가를 전송할 목적으로 설계한 통신위성 광명성 2호인가. 정체가 무엇이었든간에 그것은 세계의 이목을 끌었다.

북한은 2012년까지 ‘강성대국’이 되는 것이 자국의 목표이며, 이번 발사는 북한의 법적인 권리 내에서 실시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967년 체결된 ‘외기권 우주조약’은 모든 국가들에 과학적 우주 탐사에 대한 절대적 권리를 보장하고 있다. 그리고 북한은 국제해사기구(IMO) 및 국제민간항공기구(ICAO)에 사전 통보하는 것을 비롯해 필수적인 법적 요건을 준수했다.

주요 정부들, 특히 일본과 미국은 북한이 그 같은 권리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고, 발사 물체가 설령 위성이었다 하더라도 이는 유엔안전보장이사회 결의 1718호에 따라 금지되어 있다고 주장했다. 결의 1718호는 2006년 북한의 미사일 및 핵실험 이후 채택된 것으로 미사일과 관련된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발사 직후 일본은 안보리 소집을 요구, 적절한 징벌적 조치를 취하고자 했으나 거부권을 가진 중국과 러시아의 반발에 부딪혔다. 중국과 러시아는 2006년 안보리 결의가 1967년 조약이 보장하는 권리를 소멸시킨다는 주장에 동의하지 않았다. 안보리는 (결국 안보리 결의가 아닌 의장성명으로 수위를 낮춰) 2006년 결의의 원칙들을 재확인하는 선에서 대응키로 했다. 큰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한·미·일 신경돋운 北로켓 발사

세계 대부분의 언론은 이번 사태에 있어 어쨌든 북한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상충되는 규칙들의 해석에 관한 기술적 문제를 떠나, 이번 발사는 더 광범위한 맥락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북한이 공격 위협을 제기했다고 믿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대신 북한은 자국의 안보 문제, 그리고 적국의 공격으로부터 확실히 면제된다는 보장을 얻는 데 골몰하고 있다. 북한은 사납게 돌진하는 것이 아니라 바늘을 뻣뻣하게 세워 국제 기구들에 저항하는 일종의 ‘고슴도치 국가’다. 둘째, 베이징 6자회담의 와해와 2007년 2월 발표된 2단계 조치의 지연은 북한과 마찬가지로 다른 참가국들에도 책임이 있다. 북한은 자신들은 합의된 의무를 꼼꼼히 이행했는데, 미국이 받아들일 수 없는 새로운 요구 사항을 추가했다고 항의한다. 북한은 또 새로운 외교·협상을 약속하고 권력을 잡은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지난 3월 한반도 전쟁에 대비하는 훈련을 실시했다며 화를 냈다.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이 북한의 핵·미사일 프로그램(일본의 경우엔 납치 문제)으로 논의의 폭을 좁혀가면서 협상에 대한 북한의 흥미는 줄어들고 있다. 그러나 회담에 관한 북한의 관심도는 높아지고 있기도 하다. 포괄적 관계 정상화, 한국전쟁의 종전 조약 체결, 다자 경제 협력, 식민통치에 대한 일본의 배상 등이 6자회담의 의제로 구체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교착 국면은 북한의 통제 범위를 넘어서는 요소들의 탓이 크다. 미국과 남한에 들어선 새로운 정부와 일본의 특수한 국내 상황이 그것이다.

북한은 고도의 전시 대비 상태를 유지하는 것만큼 미국의 주의를 끌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리언 시걸 미국 사회과학연구협의회 동북아 안보협력 프로젝트 국장은 ‘원자과학자회보’ 1월호에 “미국이 약속을 지키는 데 실패하면 북한은 언제든지 재빠르게 보복한다. 1998년 북한은 우라늄을 농축하고 장거리 대포동 미사일을 실험할 수단을 확보하려고 노력했다. 2003년 플루토늄 프로그램에 다시 불을 붙였으며 2006년에는 대포동 미사일을 시험 발사하고 핵실험을 수행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북한은 영변 핵시설의 불능화를 중단했고 플루토늄 생산을 재개하겠다고 위협했다”고 썼다. 다시 말해서 만약 1998년의 대포동 미사일이 미국을 협상 테이블로 끌어냈고 2006년의 핵실험이 포괄적 협정으로 가는 길을 열어줬다면, 북한은 2009년에도 유사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지 않을까. 따라서 북한의 전술을 반항이나 공갈로 해석하는 것보다는 미국의 위협에 대한 계산된 대응으로 보는 것이 낫다.

물론 남한은 북한에서 벌어지는 사건에 가장 많은 영향을 받는다. 북한은 이명박 정부가 2000년 6월과 2007년 10월의 남북 공동선언을 준수하지 않는 등 햇볕정책과 거리를 두려고 하는 것에 격분하고 있다. 이번 발사 직후 남한은 ‘단호한’ 국제적 대응을 요청하는 목소리에 동참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레토릭을 완화했고 남북 협상을 재개할 준비가 되어있다고 선언했다. 오는 7월은 되어야 러시아의 협조를 받아 위성을 발사하는 한국에선 많은 사람들이 북한이 선수를 빼앗은 것에 깊은 인상을 받았을 수도 있다.

일본은 어떤가. 대포동 1호가 1998년 예고도 없이 일본 하늘을 가로지른 이래로 북한은 일본의 주요 관심사였다. 일본의 입장은 6자회담의 다른 참가국들과 많이 다르다. 오직 일본만이 부시 행정부가 대북 협상으로 태도를 바꾼 것과 북·미 관계에 해빙기가 도래한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일본은 30년 전의 납치 문제가 6자회담 의제에 포함돼야 한다고 오랜 기간 미국을 집요하게 설득했다. 2007년 6자회담에서 합의가 도출된 후 일본은 그 이행을 저지하거나 지연시키기 위해 엄청난 외교적 노력을 기울였다. 우선 부시 행정부가 북한을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삭제하지 못하도록 압력을 가했고, 북한에 중유를 제공해야 할 의무의 이행을 거부했다.

압박할수록 北도 맞받아칠 것

지난 5일 일본의 평범한 사람들이 벚꽃놀이를 즐기는 동안, 북한의 발사는 일본 당국을 격분시켰다. 북한한테서 항복 문서를 받아내려고 일본이 쏟아부은 수십년간의 노력은 모두 헛된 것이었다. 일본은 납치 이슈에서 아무 성과도 얻지 못했다. 일본은 북한의 발사를 막지 못했고 안보리에서 만족스러운 비난 결의를 끌어내는 데도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일본의 가혹한 제재 정책에도 불구하고 이번 북한의 발사는 북한의 과학적·군사적 일정이 이 제재의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아마도 일본이 북한에 대해 정기적으로 하고 있듯이, 북한이 일본 상공에 정찰 위성을 띄울 수 있는 기술력을 확보하는 단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전망만큼 일본 관료들을 씁쓸하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다.

아소 총리의 완고한 태도와 발사 잔해를 요격하라는 그의 명령은 그의 국내 지지율을 높이고, 다가오는 선거에서 그가 승리할 가능성을 약간이나마 향상시킨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또 아소가 유권자들에게 값비싸고 검증되지 않은 미사일 방어 시스템을 ‘판매’하는 데 도움을 주고 일본의 전면적인 재무장과 개헌을 용이하게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조치는 일본과 동북아 지역에 불안정성만 심화시킨다. 역사는 만약 어떤 것이 북한을 억제의 나사를 조이는 용도로 사용할 경우, 북한이 맞받아치기 전술로 응수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한반도 및 한반도를 둘러싼 지역의 과거·현재에 존재하는 왜곡과 폭력, 상처 그리고 북한을 비롯한 모든 참가국들의 불만이 해결될 때 이 지역에도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이 존재하게 될 것이다.

<개번 매코맥 호주국립대 명예교수|정리 최희진기자 daisy@kyunghyang.com>
"Mystery Object in the April Sky"

What was it that North Korea launched on 5 April: Taepodong-2 (an intercontinental ballistic missile capable of, and perhaps designed to threaten Japan and the US), or Kwangmyongsong-2 (an experimental communications satellite, designed to broadcast revolutionary songs)? Whatever it was, it attracted the world's attention, and an enormous concentration of hostile military force -ships, submarines, surveillance aircraft, satellites and radar systems of the US, Japan and South Korea-before disappearing, either into space or the Pacific Ocean.

North Korea's insists that its goal is to become a "strong and prosperous country"(强盛大國) by 2012, and that its April launch was within its legal rights. The Outer Space Treaty of 1967 guarantees all nations the absolute right to scientific exploration of space, and North Korea observed the necessary legal niceties, including advance notice to the appropriate international maritime and aviation bodies (IMO and ICAO).

Major governments -notably Japan and the US- denied that North Korea had such a right, insisting that, even if the launch object was a satellite, it was forbidden under Security Council Resolution No 1718, adopted in the wake of North Korea's missile and nuclear tests of 2006, which banned any "missile-related activity."

After the launch, Japan promptly called on the Security Council to take appropriate punitive measures, but the Council was divided. China and Russia, both with veto rights, were not persuaded that the 2006 Security Council resolution could extinguish a right guaranteed by the 1967 treaty. Most likely the Council would confine itself to a mild response, such as a reaffirmation of the principles of the 2006 resolution. Since that resolution has been mostly ignored, with not a single country reporting any step in its implementation now for over a year, restatement could scarcely make much difference.

Most global media assumed North Korea was somehow at fault. However, apart from the technical question of interpretation of conflicting rules, the launch has to be seen within a broader context. Almost nobody believes that North Korea poses a threat of aggression. Instead, it is obsessed with security and the search for an absolute guarantee of immunity from attack by its enemies. It is a kind of "porcupine state," resisting foreign bodies by stiffening its quills, not an expanding or rampaging one. Second, blame for the breakdown in the multilateral Beijing negotiations and the stalling of Phase 2 of the February 2007 agreement attaches to other parties at least as much as to Pyongyang. It protests that it meticulously performed its agreed obligations only to have the US add fresh, and unacceptable, demands (on verification). It was also angry and disappointed that the Obama administration, coming to power promising negotiations and "new" diplomacy, instead went ahead during March with war games rehearsing renewed peninsular war.

North Korean interest in negotiations diminishes as other parties attempt to narrow the focus to its nuclear and missile programs (or, in the Japanese case, abductions) and grows as the agenda incorporates comprehensive normalization, a treaty to end the Korean War, multilateral economic cooperation, and Japanese reparations for colonialism. The current impasse owes largely to factors beyond its control: elections and new governments in the US and South Korea and peculiar Japanese domestic considerations.

North Korea has learned that nothing succeeds so much in attracting American attention, even earning a grudging respect, as the maintenance of high-level military preparedness. As Leon Sigal wrote (Bulletin of the Atomic Scientists, January 2009), "Whenever the United States fails to keep its side of the bargain, North Korea is quick to retaliate -in 1998 Pyongyang sought the means to enrich uranium and test a long- range Taepodong missile; in 2003 its reignited its plutonium program; in 2006 it test-launched a Taepodong and conducted a nuclear test; and last August it suspended disablement of its Yongbyon facilities and threatened to resume plutonium production." In other words, if its Taepodong brought the US to the negotiating table in 1998 and its nuclear test opened the way towards comprehensive agreements in 2006, could not a similar outcome be expected in 2009? Its tactics would therefore be better seen not as recalcitrance, blackmail, or belligerence, but as a calculated response to American intimidation.

As for South Korea, it is of course the most affected by events in the North, but has little capacity at the moment to influence events because South-North relations are at a nadir. North Korea is angry at the efforts of the Lee Myung-bak government to distance itself from "Sunshine" politics, even to the extent of being unwilling to honor the joint South-North declarations (on cooperation) of June 2000 and October 2007. Following the launch, Seoul joined the call for a "stern" international response, but it also softened its rhetoric and declared readiness to resume negotiations with the North. Many in South Korea may also have been impressed that Pyongyang had stolen a march on it, since a southern satellite launch (heavily reliant on Russian cooperation) is not expected till July.

As for Japan, North Korea has been a major preoccupation at least since Taepodong-1 flashed unheralded across its skies in 1998. Japan's stance differs crucially from that of other parties at Beijing. It alone fiercely opposed the late Bush government's switch to negotiations and the thaw that came over the US-North Korea relationship. It tried long, though unsuccessfully, to persuade the US to share its view that the abduction of its citizens three decades ago should be included on the Beijing agenda, while to its own people it even insisted that the abduction issue was more important than nuclear weapons or missiles. After the 2007 agreements in Beijing, it made huge diplomatic efforts to block or delay their implementation, first pressing the Bush administration not to remove North Korea from the list of terror-supporting states and then refusing to meet its own obligation to provide heavy oil to North Korea.

On 5 April, while ordinary people enjoyed cherry-blossom parties, the launch infuriated and humiliated the Japanese establishment. Its years of efforts to squeeze Pyongyang into capitulation had been fruitless. It had got nowhere on the abduction issue, failed to persuade the US to share its hard-line or its view of the abductions as the key North Korean crime, failed to stop the launch, failed to persuade the world that it was decisively military rather than civil in character, and now, it likely was going to fail to exact a satisfactory resolution of condemnation from the Security Council. Furthermore, despite Japan's severe sanctions policy, North Korea's launch seemed to indicate that its scientific and military agenda was little affected. Perhaps nothing could be bitterer for Japanese bureaucrats than the prospect that North Korea might be moving towards the capacity to launch spy satellites over Japan, as Japan regularly does over North Korea.

Prime Minister Aso's tough posturing, and his orders to shoot down any debris from the launch, seems to have raised his domestic support levels and improved his prospects, however slightly, for the forthcoming election. It might also help him "sell" to the electorate more of the unproven and hugely expensive missile defense systems, and perhaps boost the case for constitutional revision and full-scale Japanese rearmament. But such steps merely threaten deeper instability for Japan or the region. History shows that Pyongyang responds tit-for-tat to punitive measures, if anything using them to tighten the screws of repression. Only when the distortions, violence and wounds of the past and present of the peninsula and its surrounding region, and the grievances of all parties, including North Korea, are addressed can there be any lasting peace and stability.

입력 : 2009-04-13 18:23:42수정 : 2009-04-13 23:13: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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